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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원… 서민에겐 거금, 갑부에겐 껌값 '벌금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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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원… 서민에겐 거금, 갑부에겐 껌값 '벌금의 모순'

입력
2013.09.0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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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를 써서든 자녀를 특별하게 키우려는 부유층에게 벌금 1,500만원이 범죄억제 효과가 있을까.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시킨 혐의로 기소된 현대가 며느리 노현정(34)씨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 박상아(40)씨에 대해 최근 벌금 1,500만원의 형이 확정됐다. 유럽에서 과속운전을 한 노키아 부회장이 벌금 1억7,000만원을 낸 것과 비교된다. 국내에도 재산에 따라 벌금을 차등 부과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천지방법원은 업무방해 혐의로 약식기소 돼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은 노씨가 지난달 기한 내에 항소 격인 정식재판 청구를 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고 6일 밝혔다. 노씨에 앞서 선고를 받은 박씨 역시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았다. 모두 벌금을 순순히 내겠다는 의미이다. 약식재판은 서류로만 선고하기 때문에 이들은 법정에 한번도 서지 않았다.

부유층에게 선고되는 소액 벌금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법원은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에 증인출석 요구를 받았으나 불응한 정용진(45) 신세계 부회장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벌금 700만원을 구형했으나, 법원이 그나마 해당 법률(국회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기준 최고액으로 올린 것이었다.

이런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고인의 재산과 소득을 고려해 벌금 산정기준을 달리하는 일수(日數)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일수벌금제란 동일 범행에 동일 벌금을 물게 하는 우리나라의 총액벌금제도와 달리, 피고인의 경제력을 고려해 1일당 벌금액수를 정한 후 재판에서 선고된 일수를 곱해 내도록 하는 방식이다.

일수벌금제는 1921년 핀란드가 첫 도입한 이래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시행 중이다. 가장 강력한 제도를 둔 독일은 평균 순소득을 따져 하루 1유로(약 1,500원)에서 최고 3만유로(약 4,460만원)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벌금일수는 최대 360일이며, 복수의 벌금형이 함께 내려지질 경우 720일까지 산정 가능하다. 최고 32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고, 미납할 경우 벌금일수 1일당 1일의 징역ㆍ금고ㆍ구류형으로 대체된다. 핀란드의 경우 복수의 벌금형이 내려질 경우 최대 240일까지 산정 가능하다. 1일 벌금액은 월 평균 수입의 60분의 1로 산정해 독일의 절반 수준이다. 다만 최고액 한도를 두지 않아 피고인의 지불능력에 따라 천문학적인 액수의 벌금 부과도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1980년대 후반 국회에서 일수벌금형제도 논의가 시작됐으나 '취지는 좋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다. 국세청 등이 파악하고 있는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등 상당수 고소득자들의 소득신고 내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러나 요즘은 재산파악 비율이 월등히 높아진 만큼 형벌 형평성을 위해 일수벌금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일수벌금형 도입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유성엽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은 국가가 조세 기준인 개인의 소득ㆍ재산 수준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임방기를 숨기려는 핑계일 뿐"이라며 "'유리지갑'인 직장인에게 더 피해가 갈 것이라는 주장도 재산보유 현황을 함께 고려한다는 내용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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