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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김재박 감독 "1회 대회 준우승 주역? 그땐 썩 잘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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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김재박 감독 "1회 대회 준우승 주역? 그땐 썩 잘하지 못했죠"

입력
2013.09.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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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수 제대로 짚으셨네." 신생팀 시절, 무명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김재박(59) 전 LG 트윈스 감독은 그렇게 말했다. 그의 야구 인생이 대체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생팀 대광고와 신생팀 영남대를 거쳐 신생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뛰었다. 대광고는 1971년 제1회 봉황대기에서 쟁쟁한 명문 팀들을 꺾고 준우승했지만, 그는 썩 돋보이지 못했다. "잘 했으면 야구 명문대학에 스카웃됐겠지요."그러니까 '봉황 원년스타'라는 타이틀은 훗날의 김재박의 명성이 치장한 신화라는 거였다. 1일 오후 7시.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일하는 그를 만났다.

-봉황대기가 부활했다.

"환영한다. 전국 모든 고교가 참가해 단판승부를 벌이는 봉황대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 있는 고교야구대회다. 봉황대기의 부활이 고교야구 부흥의 신호탄이 됐으면 좋겠다."

-1971년 대광고 준우승의 주역인데.

"신생팀에선 감독 역할이 8할이다. 당시 우리 팀은 누가 봐도 8강도 못 갈 팀이었다. 하지만 감독의 패기와 열정에 선수들이 혼신을 다해 따랐다. 그 덕에 선린고 배명고 휘문고 등 강팀들을 하나하나 꺾으며 자신감도 키워갔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봉황대기 결승전이다. 동대문 경기장에 입장하는데 수천명의 관중들이 "와, 와~"하고 함성을 질러댔다.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경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덕아웃에 들어가서도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긴장하고 떨었다."

-신생팀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거다.

"의욕은 컸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 대광고는 크리스천 고등학교여서 일요일엔 연습도 시합도 못했다. 욕심 많은 학생들, 감독의 불만이 컸다. 협회에다 사정하고, 협회에서 학교에 청해 일요일에도 야구를 할 수 있었다."

-이번 봉황대기에는 4개의 신생팀이 참가했다.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절대 포기하지 마라. 나는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서울로 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지명이 안 돼 신생팀인 영남대에서 뛰었다. 여기서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끝이라는 위기의식에 대학교 1,2학년 때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그때의 지옥훈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목표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꿈을 이룰 것이다."

-고교야구의 매력은 무엇인가?

"27회 연장까지 경기한 적이 있다. 오후 2시에 시작해서 통행금지 시간인 밤 10시까지 끝나지 않았다. 경기 중간에 김밥과 바나나로 허기를 달래며 악착같이 뛰었다. 그러고도 비겼다. 그런 게 고교야구의 매력이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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