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세간엔 늘 기업 또는 기업인들을 둘러싼 소문이 돈다. 'A기업이 새 정부와 불편한 관계다' 'B회장이 곧 교체된다' 등등. 소문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지만, 결국은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도 많다.
재계는 정권과 해당기업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초청장'을 꼽는다. 청와대 초청행사 혹은 대통령 해외순방 초청 여부를 보면 해당기업 또는 기업인의 현 주소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퇴설에 휘말려 있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이 그런 경우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터라 새 정부 출범 초부터 거취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청와대 행사 초청장을 받지 못하면서 퇴진설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정준양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5월 방미, 6월 방중 때 경제사절단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청와대 초청 10대 그룹 총수오찬에 초청받지 못하고, 이번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기업인 명단에도 빠진 뒤 특별세무조사까지 시작되자 "정 회장의 거취에 변화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명단에서 빠진 것에 대해 해명이 있었고 포스코 역시 6일 "사퇴는 사실 무근"이라며 강력 부인했지만, 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은 박 대통령의 방미 때 빠졌고, 방중 때는 포함됐지만 국빈만찬 초청장은 받지 못했다. 이번 베트남 경제사절단에도 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만약 대통령 행사에 초청받았더라면 퇴진설은 수그러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으로, 지난 정부 초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했지만 새 정부 들어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은 한미 재계회의 명예회장으로 미국 재계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 박 대통령의 방미 경제사절단에 끼지 못했다.
방중 때는 포함됐지만, 이번 베트남 방문에선 또다시 누락됐다. 특히 효성은 베트남에 지난 6년간 1조원 가까이 투자하고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1%를 차지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베트남 수행기업인 명단에서 빠지자 재계에선 "정부가 효성을 배제하는 게 확실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조 회장은 초청명단에서 최종 누락된 후, 세무조사 관련해 출국금지까지 된 상태다.
박 대통령의 방중 때 강덕수 STX회장은 수행명단에 포함되기 위해 막판까지 애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다롄 조선소 등 중국 내 비즈니스 및 중국 지도부 내 지인도 많지만, 그는 중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한 재계 소식통은 "그룹 해체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강 회장을 도와준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빠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반대로 지난 정부 때는 홀대 받다가 현 정부에선 매번 초청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좀처럼 기를 못펴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 정부들어 중국에 이어 베트남 사절단에도 이름을 올렸고, 역시 지난 정부에서 초청 명단에 종종 빠졌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미국 중국 베트남까지 3회 연속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현 회장은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즈니스가 많지 않은데도 초청장을 받게 되자 "현 정부에서 배려 받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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