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1일 충북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 1차전. 무명의 장안고가 38년 역사의 강호 강릉고를 6대2로 꺾었다. 이틀 뒤인 9월 2일에는 전력조차 알려지지 않은 소래고가 전국대회 7회 우승에 빛나는 '서울의 자존심' 충암고를 3대2로 눌렀다.
두 팀은 각각 지난 3월과 지난해 10월 창단한 신생팀이다. 응원가도, 경험 많은 3학년 선수도 없고, 주요 대회 출전조차 사실상 처음. 그렇게 만들어진 파란과 이변의 드라마들로 이미 봉황대기는 뜨거워졌다. 기량에 주눅들지 않은 투지, 관록에 맞선 패기의 주역들을 우리는 만났다. 18살 고교 2년생 동갑내기들인 장안고의 윤종휘 최영웅 한성일 선수와 소래고의 김기환 이국선 정효영 선수다.
윤종휘 선수는 "다른 대회는 '주말야구제'라 주중에는 쉬게 되니까 잘 하는 선수만 계속 그라운드에 선다. 후보들은 출전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경기하는 봉황대기는 여러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다. 이번 대회에서 기량을 펼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성일 선수에게 봉황대기는 '짜릿한 경험'이다. 그는 31일 강릉고와 맞선 6회 1사 3루 상황에 타석에 올라 동점 희생플라이를 터뜨렸다. "1대0으로 뒤지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주자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망이를 한껏 휘둘렀다."선수들은 시합으로 성장한다. 이번 시합에서는 유격수로 나서지만 공격형 포수가 꿈이라는 최영웅 선수는 "감독님이 우리 팀은 더 정비해서 내년부터 선보이려고 했는데 경험 삼아 출전한 대회에서 첫 승을 거둔 것"이라며 "한 번 이기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본아마야구협회에 등록된 고교 야구부는 4,235개. '고시엔(甲子園ㆍ한신전기철도 야구장으로 일본 고교야구의 대명사)'을 향한 지역 주민들의 응원 열기도 프로야구 못지 않게 뜨겁다. 한국 고교 야구팀은 9월 현재 57개. 프로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고교야구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지적은 계속 돼왔지만 현실은 제자리 걸음이다.
그렇지만 고교야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팀간 선수간 경쟁의 열기까지 미적지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지의 거름이 되기도 한다. 김기환 선수는 "먼저 다니던 학교에서는 대수비와 대주자만 했다. 단 한번도 타석에 서보지 못했다. 기회를 찾아 소래고로 전학 왔다. 여기서도 안 되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3일 충암고를 상대로 3회 싹쓸이 3루타를 터뜨리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주목 받지 못해 외로운 만큼 선수들끼리의 결속력도 강하다. 이국선 선수는 "다른 학교에서 뛰다 지난 3월 어깨 부상과 슬럼프로 야구를 접고 방황한 적이 있다. 그러다 8월쯤 지금 감독님을 만나 (전학 와서) 다시 배트를 잡게 됐다. 꼭 승리해서 다시 기회를 준 모두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약속처럼, 다짐처럼, 그들은 잘 싸워오고 있다. 시합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그들도 알고 있는 듯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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