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예의 현학적인 영화비평보다, 리드미컬한 문어체의 말투로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아마, 저 유명한 '정은임의 영화음악실' 때문일 게다. 일명 '정영음'으로 불린 그 프로그램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방송된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녀의 진지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와 비극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종방 후 전설의 프로그램이 됐다. 정성일씨는 이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새 영화를 소개하며 딱딱한 문어체 말투를 매우 빠르게 구사했는데, 랩을 하는듯한 리드미컬한 말투를 듣다 보면 이 사람의 머릿속이 고스란히 전파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런 짐작을 대다수 사람이 한듯한데, 아직까지 그가 유일하게 연출한 영화'카페 느와르'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신하균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 문어체로 말하는 사람이 있군요!"
어쨌든 정은임의 추모글 '아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내가 읽은 정성일씨의 첫 글이었고, 나는 정씨가 쓴 영화비평을 역순으로 다시 찾아 읽었다. 그의 비평은 그가 사랑하는 임권택이나 왕가위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보다 더 난해하고 추상적이어서 그 시절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비평을 읽기보다 그냥 임권택과 왕가위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보았다.
정성일씨의 글을 다시 찬찬히 읽게 된 건 장 뤽 고다르에 관한 비평을 읽으면서였다. '씬과 씬이 만들어 내는 세상의 시간에 대한 주름은 더할 나위 없이 깊다. 그 안에서 우리는 결국 영화를 생각하는 것이다. 고다르는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 나는 비로소 문학으로부터 빠져 나와 영화를 보는 체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367~370쪽)
그는 이 글에서 영화를 볼 때는 '쇼트 바이 쇼트(shot by shot)', 장면과 장면의 틈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줄기차게 강조하면서, 영화는 서사도 이미지도 아닌 장면을 보여주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詩)는 연과 행의 틈으로 읽어야 하는 구나.'
갓 문학을 담당하게 된 나는 정씨의 비평을 시와 소설 읽기에 하나씩 대입하며 문학의 지도를 그렸다. 제법 그의 글을 찾아 읽어갈 무렵, 그의 첫 비평집이 26년 만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40여 편의 영화비평과 에세이를 모은 이 책은 고다르의 '기관총부대'를 본 고교시절 프랑스문화원에 대한 추억에서 시작해 오자 야스히로 등 거장들의 영화비평, 자신이 찍은 첫 상업영화에 관한 장문의 에세이를 통해 한 사람의 시네필이 비평가가 된 과정을 담은 일종의 '성장 비평서'다.
이 성장스토리에서 가장 유치한 글은 책 앞부분에 실린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이란 주제로 청탁받아 쓴 4쪽짜리 에세이인데, 나는 이 고백을 읽으며 다소 현학적인 정씨의 비평이, (정씨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지적 허영의 발로가 아니라 영화에 대한 애정을 만연체로 절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짐작하게 됐다.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그 영화가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세상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들뢰즈의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사랑에는 어떤 숭고한 면이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걸 잊으면 안 된다.' (55쪽)
책을 다시 읽은 건 7월의 어느 밤, 열리지 않는 한국일보 편집국 문 앞에서였다. 몇 년 간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 알게 된 학자들의 이론서와 그렇게 알게 된 거대한 관념의 세계는 우리가 당면한 부박한 현실과 너무 큰 괴리를 갖고 있었다. 주먹은 펜보다 강했고, 나는 무력하게 앉아있었다. 글쓰기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정씨의 저 절박하게 유치한 고백은 필사적으로 영화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다시 필사적으로 세상의 문을 찾겠다는 선언으로 끝맺는다.
'"나는 사랑하고 있을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괴테 에서) 나는 거기에 이렇게 말을 더하고 싶다. 나는 영화를, 또 다른 영화를, 미처 보지 못한 영화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같은 말의 다른 표현. 나는 세상을, 또 다른 세상을,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 기.다.리.고.있.으.니.까!'
추상과 관념의 세계가 현실과 마주하는 장면. 무력한 글쓰기로 구원할 수 있고, 구원해야 할 세계가 있다는 제언.
정씨의 애정이 꽤 비장하지만,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일러스트레이터 정우열씨가 각 비평에 관한 삽화를 그려 넣어 이해를 돕는다. 영화보는 강아지 '올드독'의 일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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