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병원에 한센인 한 분이 진료를 받으러 갔어요. 그런데 병원 측에서 돈을 집어던지며 '병원 문 닫게 하려고 작정했느냐'며 내쫓더군요.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아 한센인을 진료하게 됐지요. 주일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센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지난 34년 동안 묵묵히 전국 방방곡곡의 한센인과 가난한 가톨릭 신학생 등을 위해 인술을 펼쳐 온 치과의사 강대건(81ㆍ강대건치과 원장)씨가 교황 프란치스코의 훈장을 받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11일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소성당에서 강씨에게 교황이 주는 '교회와 교황을 위한 십자가 훈장'을 전달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훈장 증서에서 "존엄한 교회와 교황을 위한 십자가의 표지로 탁월한 업적과 학덕으로 두드러진 이들, 무엇보다 강대건 라우렌시오 형제에게 이 훈장을 줄 것을 공포한다"고 밝혔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취임한 이후 한국 평신도에게 십자가 훈장을 수여하기는 처음이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입구에 개원하고 있는 강 원장은 1979년 5월부터 전국을 누비며 한센병 환자 1만5,000여명을 무료로 치료해줬다. 지금까지 한센인들에게 만들어 준 틀니만 대략 5,000개에 이른다. 그가 초창기 진료를 다녔을 때만 해도 한센병 환자는 전국에 40만명에 달했지만 이젠 1만5,000명으로 크게 줄었다. 강씨가 자주 다녔던 전북 고창도 이제 다니지 않는다. 그 지역에서 한센병 환자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75년부터 신학생들과 신부, 수녀, 선교사 등의 치과 진료도 무료로 해주었지만 주위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강씨는 그동안 여러 가톨릭 단체로부터 "상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고사했다. 자신에게서 치료를 받은 가톨릭 한센인 모임인 한국가톨릭자조회와 염수정 대주교가 주는 '상'이 아닌 감사패만 받았을 정도였다.
강씨는 "봉사에는 인내와 땀과 수고스러움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봉사의 기쁨을 맛보면 절대 남에게 주고 싶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늘 '사랑은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 온다'고 말씀하셨다"며 "다시 태어나도 꼭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십자가 훈장은 1888년 교황 레오 13세가 사제수품 50주년인 금경축(金慶祝)을 기념해 교황직 수행에 기여한 이들을 위해 제정했다. '명예의 십자가'로도 알려진 이 훈장은 각국의 주교와 교황대사가 추천한 평신도나 성직자에게 주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10여 명의 평신도가 받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