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데이터의 90%가량은 최근 2년 내에 생성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시간이 흘러도 이런 비율이 대체로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업 IBM에 따르면 현재 2.7제타바이트(10의 21제곱 바이트) 규모인 데이터량이 2015년 8제타바이트에 이를 전망이다. 지금의 막대한 정보량이 2년 뒤면 사소해질 만큼 새로운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 이동속도 또한 비약적으로 늘어 지난해까지 미국 주식거래의 50~70%가 1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안에 거래를 집행할 수 있는 전자시스템에 의해 처리됐다. 통신장비 제조업체 테스코는 지금까지 세계 모든 기업이 생산한 양에 상당하는 데이터가 2017년에는 3분 만에 인터넷에서 교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천문학적인 양과 속도로 유통되는 데이터를 저장해두고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이 오늘날 IT기업들의 주된 이윤창출 방법이다. 영국의 글로벌 유통기업 테스코의 고객카드 시스템 구축으로 명성을 얻은 클리브 험비가 2006년 선견지명을 담아 선언한 대로 데이터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석유'가 됐다. 다만 갈수록 몸집을 불리는 데이터 모두가 돈 되는 석유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마이클 팔머 미국 광고주협회 부의장은 "데이터는 원유"라는 말로 험비의 명제를 비튼다. "데이터 역시 정제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데이터를 분류하고 내재된 가치를 분석해 가치 있는 실체로 창조하는 작업이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보산업이 고도화할수록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저장ㆍ처리 시스템의 취약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주간 가디언 위클리는 "소셜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위시한 데이터 소비 수요의 폭증으로 전세계 인터넷 네트워크가 전례 없는 긴장을 겪고 있다"며 '데이터 멜트다운(meltdown)' 위기가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멜트다운은 원자로 노심 융해, 즉 원자로에 장착된 핵연료가 녹아 내리는 상황을 뜻한다. 데이터 멜트다운이라는 신조어에는 데이터 저장ㆍ처리 시스템의 붕괴가 방사능 유출에 버금가는 재앙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있다.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에서 최근 발생한 접속장애 사고는 데이터 멜트다운의 징후로 볼 수 있다고 가디언 위클리는 지적한다.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닷컴은 지난달 19일 30분 가량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무려 200만달러(22억원)의 매출 손해를 입었다. 이보다 사흘 앞서 세계1위 검색사이트 구글이 비슷한 사고를 겪었는데, 4분 간의 접속장애로 구글이 날린 검색광고 수익은 50만달러에 이른다. 기업 신뢰도 하락, 사용자들의 심적ㆍ물적 손해까지 따지면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던 데이터 마비 사고가 끼친 경제적 피해는 막대했다.
데이터 멜트다운을 유발할 위험 요소로는 우선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공격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데이터 홍수 속에 신뢰성 없는 데이터 한두 건이 섞여 유입되기만 해도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4월 백악관 폭탄 공격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상했다는 거짓 뉴스 때문에 미국 주가가 폭락했던 일이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오보는 해킹 당한 AP통신 트위터 계정을 통해 유포됐는데, 전자 주식거래 시스템이 이를 반영해 자동으로 대량 매물을 쏟아내면서 다우지수는 몇 초 만에 143포인트가 하락했다.
데이터분석업체 테라데이터의 던컨 로스 이사는 "데이터 기반 사업이 점차 정부나 기업이 생산한 외부 데이터에 의존하는 일이 늘면서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의 유입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의 질이 어떠냐고 묻는데, '좋다'고 답한다면 필시 데이터베이스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 위험요소 없이도 데이터 시스템이 내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IT 기반시설이 데이터 증가 속도에 맞춰 증설되기 어려운 데다가 데이터 과부하 등 비상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만큼 탄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 유통구조는 고도로 자동화ㆍ복잡화해 더 이상 인간이 시스템 오류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난달 22일 뉴욕 나스닥 주식시장을 3시간 동안 마비시켰던 내부 데이터 네트워크 장애는 데이터 멜트다운의 위기감을 한층 키우고 있다. 던컨 로스는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보안책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에 잉여 데이터를 과도하게 축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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