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태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국가정보원수사는 경기동부연합으로 대표되는 통진당 내 종북 성향 당권파를 직접 겨냥하고 있지만 파장은 진보진영 전체로 번지고 있다. 종북의 굴레는 통진당을 존폐의 갈림길로 내몰뿐 아니라 진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진보 진영이 절박한 각오로 출구를 모색하지 않으면 10년 진보의 실험은 물거품이 돼 버릴 위기 상황이다.
분파주의와 패권주의가 위기 불러
민주노동당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하며 제도권 정치 무대에 등장한 이래 진보 진영은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그만큼 계파갈등이 심했다는 의미다. 여전히 진보 진영의 두 축인 민족해방(NL,National Liberation) 계열과 민중민주(PD, People's Democracy)의 주도권 다툼이 핵심 요인이었다.
현재의 진보진영 위기는 분파주의에서 비롯된 갈등이 근본 원인인 셈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 동안 진보진영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 NL과 PD가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면서 "진보 진영의 주도권 다툼이 계속적인 갈등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의 헤게모니 경쟁은 대체로 NL의 우세로 진행돼 왔다. 2012년 4ㆍ11총선을 앞두고 진보가 통진당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했지만 주류는 NL이었고 핵심은 종북 성향의 경기동부연합이었다.
문제는 NL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패권주의적 행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총선 직후 불거진 통진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정 정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면 토론이나 내부 견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패권주의적 행태는 지난해 분당 사태 이후 통진당 내부에서도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종북의 그림자 지우는 작업이 급선무
전문가들은 진보진영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무차별적 연대와 통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우선 조언했다. NL과 PD의 정치적 지향점은 도저히 간극을 좁힐 수 없는데도 진보의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무리하게 연합을 거듭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선명한 자기 색깔로 현실 정치에서 승부하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헌법 질서조차 부정하는 것으로 드러난 종북주의와는 완전 결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진보세력은 북한 체제의 비판을 통해 진보 영역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도 "종북 세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우리 사회와 진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석기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진보진영이 '지하세계'에 머물고 있는 한 현실 정치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대중화 적업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총기탈취를 농담으로 치부하는 정당은 대중을 기만하는 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공권력과의 물리적 충돌을 거치면서 성장해 온 진보 세력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중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 비전의 발굴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 동안 진보정당은 주도권 경쟁에 올인하면서 과거 사회주의국가 시절의 정책모델에 머문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택광 교수는 "서유럽의 진보정당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던 반면, 우리 진보정당은 분단상황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면 미국의 식민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골몰했다"고 비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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