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ㆍ이과를 통합해 문과수준으로 수능을 치면 미적분Ⅱ를 배우지 않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미적분은 문제풀이보다 이해한 개념을 전공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배운다면 시행착오를 오히려 줄일 수 있다."(배영찬 한양대 입학처장ㆍ화학공학과 교수)
1963년 제2차 교육과정 이후 50년간 유지된 고교 문ㆍ이과 장벽을 걷어내기 위한 마지막 열쇠는 입시를 주도하는 대학이 쥐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방안을 내놔도 대학이 인문ㆍ자연계를 구분해서 신입생 선발하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친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지적이다.
수능에서 수학과 과학을 문과 수준으로 출제하고 고교에서 이들 과목에 대한 학습 부담을 줄이면, 대학 이공계 신입생들의 수학과 과학 학력(學力)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대학에서 곧바로 전공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고교에서 자연과학의 기초학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통합 수능을 반대하는 주된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교가 덜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더 가르쳐는 것이 해법이라는 시각도 많다. 오히려 그동안 대학들이 '학습된 학생들'을 뽑아가는 데 급급했던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고교에서 기초학력수준을 높여 진학한 덕에 대학은 그동안 편하게 지내왔다"며 "학력저하를 이유로 문ㆍ이과 통합을 반대할 게 아니라 대학이 융합형 시대에 맞게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영찬 교수는 "고교에서는 폭 넓게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닦고, 학력저하현상은 대학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선진국들도 대부분 대학에서 이공계 기초 과목을 가르친다. 대신 기초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보완책으로 '고교-대학 연계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는 고등학교 졸업 후 9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수학과 영어 입학성적에 따라 예비 신입생들에게 수강여부를 알려준다. 입학 후 학과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6주 동안 수학 등 수업을 듣는다. 이제봉 울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연계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입학 전 예비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ㆍ이과 통합 논의에서 중요한 또 다른 축은 대학입시 제도의 개편이다. 수능은 계열구분 없이 통합 과목을 치러도 대학들이 전형에서 내신 과목별 가산점을 주는 식으로 계열을 구분하기 시작하면 고교 교육은 여전히 문∙이과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인문ㆍ자연계열별로 학생을 모집하는 현재의 입시제도를 깨뜨리면 융합형 인재 양성에도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대학들이 자유전공학부를 잇따라 개설하고 문ㆍ이과 교차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서울대는 2014학년도 수능부터 공대 건축학과와 산업공학과에 한해 문과생도 지원을 허용해 문과생에게 공대 입학의 문을 처음 열어주었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문ㆍ이과 학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닌 만큼 경영학과와 상당수 겹치는 산업공학과, 디자인 감각이 필요한 건축학과에서부터 문ㆍ이과 교차지원을 허용, 점차 다른 학과로 늘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계에서는 전공 특성에 맞는 과목 중심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조언한다. 가령 생물학적 지식과 윤리의식이 필요한 의대의 경우에는 생물 화학 윤리를, 경제ㆍ경영학과에서는 수학(미적분)과 사회를 고교 필수이수과목으로 정해 신입생 선발에 반영하는 등 전공 특성에 맞는 과목을 듣게 하면 자연스레 문ㆍ이과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동희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 문ㆍ이과 구분이 있었다면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인 천재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대학이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한 입시제도 개편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