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은주(32)씨는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산지 10여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가족을 맞기로 결심했다. 러시안블루종 고양이 로이를 입양한 것이다. 이씨가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택한 것은 고양이가 독립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개보다는 외로움을 덜 탄다는 고양이가 더 적합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고양이를 길러보니 그리 도도하지만은 않았다. 정이 없고 주인 못 알아본다는 속설도 거짓이었다. 이씨가 회사에서 퇴근해 현관문을 열면 로이는 어김 없이 마중 나와 반갑게 "애오애오" 울었다. 이씨는 "서울에 와서 항상 긴장한 채 팍팍하게 살았는데 요즘은 로이 때문에 마음이 따뜻하다"며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에 감동적인 장면만 나와도 저절로 눈물이 날 정도로 감상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고양이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3년 전부터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프리랜서 편집디자이너 김미림(33)씨는 "당분간 결혼할 계획이 없는데 혼자 지내기 적적해 고양이를 입양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 특성상 생활이 불규칙하고 밤샘도 잦아 누군가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내게 고양이는 최고의 가족"이라고 설명했다. 고양이는 사료를 그릇에 담아두기만 하면 알아서 조금씩 먹고, 배변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화장실을 잘 가려 개처럼 신경 써서 돌봐줘야 할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는 "고양이가 성숙하게 행동해 어떤 때에는 친구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고양이를 유난히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이젠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가 한국사회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가정에서 기르는 고양이 수가 지난해 약 116만 마리로 추산됐다. 2010년 추산치가 약 63만 마리였던 것에 비춰 보면 2년 만에 두 배가 늘어난 셈이다. 한국사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고령화, 핵가족화, 무자녀 등으로 인한 외로움을 반려동물로 대체하려는 사회적 추세가 이런 증가율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층은 20, 30대 여성이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1,489명을 조사한 결과,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 중 20, 30대가 42%나 됐다. 여성 중 62%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한국리서치 관계자는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은 고양이의 개성과 독립심이라는 성질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가치관대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예술인이나 전문직 종사자가 고양이를 많이 기르는 것도 이 때문이란다.
고양이 때문에 삶이 바뀐 사람들
고양이 카페 체인 '고양이다락방'의 김동성(35) 대표는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 가게까지 차렸다. 김 대표가 고양이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당시에는 결혼 전이었던 아내의 부탁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아내가 '고양이를 기르고 싶은데 가족이 반대해서 당신 집에서 기르면 어떻겠냐'고 물어서 뱅갈종 고양이 나나를 입양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떠안다시피 집안에 들인 나나는 금세 김대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됐다. 김 대표는 "당시 하던 일이 잘 안돼 많이 우울했는데 나나가 이런 사정을 다 안다는 듯이 옆에 와서 몸을 비비고 핥아주는 게 큰 위안이 됐다"며 "동물 치료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2010년 결혼할 때까지 김 대표가 기르는 고양이는 열세 마리로 늘었다. 김 대표는 신혼집을 마련하면서 고양이가 지낼 공간 마련에 고민하다가 아예 카페를 차렸다. 현재 고양이다락방은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 10곳이 있다.
어떤 이들은 고양이로부터 받은 위안을 길고양이에게 다시 베푼다. 집 주변 길고양이들에게 규칙적으로 먹이를 주는 '캣맘''캣대디'가 그들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7년째 캣맘 활동을 하면서 그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 '모눈종이의 지붕 밑 다락방'에 올리고 있는 김미진(51)씨는 "내 고양이를 예뻐하는 마음이 커지니 자연히 길고양이들에게도 마음이 갔다"고 말했다. 2007년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길에서 바짝 마른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우리 고양이 밥 좀 나눠주자"고 말했던 것이 계기였다. 김씨는 "이렇게 오랫동안 캣맘 활동을 할지 몰랐는데 한 번 밥을 주기 시작하니 책임감이 생겼다"며 "길고양이가 생기는 이유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길에 버려서니까, 다른 사람들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김씨가 매일 돌보고 있는 길고양이는 13~14마리, 그 동안 구조해 입양을 보낸 길고양이는 50~60마리에 이른다.
생태계 안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을 향해
고양이와 관련한 책 출간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도 고양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1~8월 출간된 '고양이'키워드 시/에세이, 취미/스포츠 분야 책은 총 15종, 판매 부수는 1만1,000권이나 된다.
특이한 것은 길고양이 사진과 에세이를 묶은 책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 고양이 관련 책 판매순위 상위 10위권에 든 책 중 4권이 이런 것들이다. 이용한, 고경원 등 스타 작가들도 배출됐다. 국내외 오지를 떠돌며 글을 쓰는 '길 위의 시인' 이용한씨는 등 3권으로 이어진 '안녕 고양이' 시리즈와 최근작 를 펴냈는데 '안녕 고양이' 시리즈의 총 판매부수는 2009년 이후 지금까지 10만부에 달한다. 우리 주변에서 자유롭고 당차게 살아가고 있는 길고양이라는 존재가 가진 매력 때문일 것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예쁘기만 한 고양이가 아닌 현실 속 고양이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 독자 층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들 책은 길고양이가 사납고 해롭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길고양이를 도심 생태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찾자고 제안한다. 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양이도 인간과 똑같이 지구의 생명체로 태어나 같은 지층 연대를 살아가고 있다. 잘못이 있다면 하필 전세계에서 길고양이가 가장 천대받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한국이란 곳에서 길고양이는 늘 두려움과 불안, 배고픔으로 떨고 있다.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녀석들이 한국이란 곳에서, 더구나 도심이란 공간에서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며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길고양이 전문작가 고경원씨는 10여년간 서울 빌딩숲에서 거문도까지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며 길고양이 사진을 찍어 왔다. 고씨는 "도심과 재개발 지역, 섬과 탄광 마을 등 어디에도 고양이가 살지 않는 곳은 없었다"며 "사람과 고양이가 같은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행복한 공존의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해 '고양이 천국'이라고 불리는 일본과 북유럽 등도 다녀왔다.
"나에게 고양이는 선물 같았다"는 고씨가 고양이를 위해 마련한 선물은 2009년부터 매년 9월 9일에 열고 있는 '고양이의 날' 행사다. 행사날짜는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는 속담에서 착안, 아홉 개의 목숨만큼 오래 살아달란 기원을 담아 정했다. 5회째를 맞는 올해에는 자신처럼 지속적으로 길고양이를 찍어온 사진ㆍ여행작가들과 함께 '고양이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전시를 준비했다. 19개국의 고양이 사진 40여점이 9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안국동 W스테이지와 신사동 프라이데이서커스에서 전시된다. 고씨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고양이와 생명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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