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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랑의 후일담이냐고? 연애란 한 우주와 만나는 가장 치열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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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랑의 후일담이냐고? 연애란 한 우주와 만나는 가장 치열한 사건

입력
2013.09.0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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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면 너무 거창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이제는 잘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 정도일 텐데, 그것이 먼 훗날 당신을 기습한다. 22년 전 단 하룻밤을 보내고 '나'를 버렸던 차디 찼던 옛 남자가 의식불명의 아내를 애틋하게 보살피는 모습을 우연히 병원에서 마주치게 된다든가('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어느 날 "오래 전 약속대로 지금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알지 못하는, 그러나 '나'의 이름을 정확히 호명하는 어떤 여인의 문자를 받는다든가('문어를 만날 때까지'). 이래도 당신은 우뚝할 텐가. 삶에 잠복해 있던 기억의 습격 앞에서, 현재는 과거의 후일담일 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의 불가사의한 힘에 구속 당하는 삶의 타자성"(문학평론가 정여울)을 이 소설가는 다시 한번 서럽게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시인, 아니 소설가 윤대녕(51)이 일곱 번째 소설집 (문학동네 발행)을 내놨다.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의 파문을 각오하는 일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미학적으로 세련되지 못하다는 게 요즘의 문학적 트렌드지만, 이 처연한 아름다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윤대녕은 차라리 시인이다. 그가 가장 그럴듯하게 시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은 또, 늘, 연애와 연루돼 있다.

그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는 동덕여대에서 만났을 때, 작가는 대뜸 소설집을 읽은 소감을 물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사랑의 오랜 후일담 같다고 답하자, 표정이 묘해졌다. 전작 가 연애담으로 간단히 정리돼 버린 후, "연애 얘기네요"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얼굴이 뜨거워졌던 터다. 그래서 이번 소설집을 쓰는 동안 "각 편마다 다소 의식적으로 변주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연애담이 너무 없는 게 오히려 문제 아니냐고 반문하자, 그가 이내 이실직고한다. "잘 쓰기가 너무 어렵거든요."연애란 인간관계의 총화이자, 한 인간의 욕망구조를 가장 집약적이고 예리하게 보여주는 장치 아닌가. 강한 맞장구. "그렇죠. 가장 총체성을 띤 타자의 양식이 바로 연애고, 더 이상 밀접하게 타인에게 개입할 수 없는 관계가 연애죠.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의 전 생애와 만나는 것이란 말이 있잖아요. 하나의 세계, 우주와 만나는 가장 치열한 사건이죠."

그래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윤대녕을 '상춘곡'(1996)의 작가로, 윤대녕의 문장을 '상춘곡'의 마지막 구절 "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시기 바랍니다"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같은 서한체 형식으로 쓰인 이번 책의 첫 소설 '비가 오고…'는 이들을 위한 '상춘곡'의 자매편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좋겠다. 첫 아이를 사산하고, 외도를 일삼는 남편에게 얻어 맞으며, 종내에는 알코올중독으로 죽음의 날만을 기다리던 중년의 여인은 젊은 날 하룻밤의 연인이었던, 이제는 소설가가 된 남자를 병원에서 만난 후 자신의 서럽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고백하는 편지를 쓴다. 편지의 골자는 의식 없는 아내의 귀에 대고 애절하게 속삭였던 그 말을 '나'에게도 들려달라는 간절한 요청. 그 요청은 짧은 에필로그 형식으로 답신을 받는다. 윤대녕 소설의 키워드랄 수 있는 '삶의 비의'를 담은 그 간결하고 범용한 문장들. "그대는 먼 곳에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로 시작해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로 끝나는 답신은 그 간결함과 범용함으로 도리어 읽는 이를 아리고 애달프게 만든다.

마지막 단편 '통영-홍콩 간'은 열정 대신 수긍을, 매혹 대신 연민을 받아들인, 50대가 된 소설가의 불가피한 변화를 보여준다. 가족력이 강하게 암시하는 단명의 공포로 관계 앞에서 항상 위축되고 마는 남자 '백'과 십대에 군인 외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한 치명적 상처가 있는 여자 '숙'. 백은 실연을 잊기 위해, 숙은 신혼여행 차 2003년 홍콩을 찾았다가 연을 맺게 된다. 숙이 결혼 하루 만에 묵은 상처가 내파하며 남편과 헤어지고만 탓이다. 통영에 자리를 잡고 부부로 함께 살아가던 중, 최후를 예감한 백은 돌연 숙을 떠나고, 어쨌거나 또 다시 버림 받은 숙은 백을 용서하지 못한다. 외롭게 섬처럼 서로를 떠돌던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건 함께 죽어가는 것'이라는 명제에 마침내 합의하게 될 때, 마음에 퍼지는 온기와 함께 이 길 위의 작가의 구도가 이제 어느 정도는 완성된 것 아닌가 하는 시원섭섭한 마음도 든다.

표제작 '도자기 박물관'은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나이 50을 기념한 자전적 예술가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트럭 행상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뜻하지 않게 도자기 보는 눈이 트인다. 일평생 도자기에 홀려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버는 족족 쏟아버린 중년의 남편은 청양의 허름한 식당 부뚜막에서 본 백자 달항아리에 정신이 팔려 산 중에 아내를 홀로 남겨놓고 식당으로 달음질한다. 그 사이 아내는 봉변을 聆構? 남편이 어찌 해 볼 사이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름다움을 향한 욕구는 이 트럭 행상에게는 오히려 저주였다.

"제가 문학을 일찍 시작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소설을 썼으니까. 얼떨결에 50이라는 고개를 넘으면서 자꾸 뒤가 돌아봐졌죠. 문학을 해오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한테 상처를 줬다는 것, 놓치고 못 보고 살아온 것들, 다 회한으로 몰려왔습니다. 삶의 총체성이란 다만 평범하게 사는 것일진대, 문학에 인생을 빼앗겼다는 굉장한 공허함이 몰려오던 때 쓴 소설이에요. 소설을 쓰고 나니 어느 정도 극복이 된 듯합니다."

이번 소설집을 읽고, 이 여로형 작가의 아내는 "장소가 자꾸 겹치고, 공간이 협소하다"는 독후감을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아무래도 이구아수 폭포를 보내줘야 할 것 같네. 굉장한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조만간 그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 사이, 이구아수 폭포 주변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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