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신심 깊은 기독교 신자 A씨가 있다. A씨의 연봉이 1억원이라면, 2014년에는 십일조로 얼마를 내야 할까. 대부분 1,000만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면 1,015만원이 정답에 가깝다. 1,000만원을 십일조로 낼 경우 내년에는 연말정산에서 15%(150만원)를 세액공제로 돌려 받아 그만큼 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기부 행위에도 같은 계산법이 적용된다. 역시 억대 연봉자인 B씨가 구호 기관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면, 그도 150만원을 돌려 받을 테니 실제 부담은 850만원에 머문다. 1,000만원 기부로 B씨가 얻은 사회적 존경 가운데 150만원 가량은 국가 혹은 모든 납세자의 몫인 셈이다.
가상 사례를 만들어 낸 이유는 새누리당 일각에서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기부금 세액공제' 방침의 수정을 요구하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지난 달 세제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고소득층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 소득공제였던 기부금 공제 방식을 세액공제로 바꾸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중산층 세금 폭탄' 논란에 잠겨 넘어가는 듯 했던 이 문제를 최근 여당이 다시 꺼내든 것이다.
세제 혜택 축소 철회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거액 기부를 위축시키고, 기부 문화 확산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살피면 나무에 가려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좁은 지면을 감안, '개인 기부보다 국가가 세금 거둬 나서는 게 소외계층 신분 상승에 효과적'이라는 사회복지이론을 소개할 생각은 없다. 아놀드 토인비도 신세를 진 영국의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 운동에 바탕을 둔 영미권 국가의 기부 문화가 부자의 시혜적 행위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도 강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협잡과 담합, 독점으로 부(富)를 쌓은 존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존 모건 등이 생의 말년에 전설적 거액 기부자 반열에 오른 사연을 영미식 기부 문화의 한계로 얘기하지도 않겠다.
세액공제냐 소득공제냐의 문제는 건전한 상식으로 생각해도 답이 나온다. 우선 '기부 문화 확산을 막을 것'이라는 주장은 기부 문화의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급한 걱정이다. 세액공제로 바뀌면 7,000만원 이상은 부담이 늘지만, 그 이하 소득 계층은 돌려 받는 액수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소득 3,000만원 이상부터 소액 기부 하는 걸 감안하면, 세액공제로의 전환은 기부여력이 늘어난 납세자(3,000만~6,000만원ㆍ350만명)가 반대의 경우(166만명)보다 두 배 많다는 걸 의미한다.
정치권의 주장은 '중산층 세금폭탄' 사태 당시 정부를 호통치던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말 바꾸는 게 정치인의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복지 재원은 살기 힘든 중산층 대신, 고소득층에게서 거둬야 한다"고 외쳤던 의원님들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고소득자의 세부담 경감'을 주장하는 건 누가 봐도 혼란스럽다.
가장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새누리당의 일부 주장이 우리 사회의 양심인 대다수 거액 기부자의 본심을 대변하는지 여부다. 세금이 늘어나면 '아너 소사이어티'로 불리는 억대 기부자가 기부 액수를 줄일 것이라고 단정하는데, 정말 그럴까. 매년 구세군 냄비에 1억원을 익명으로 낸 독지가, 공연 수익 전액을 기부해온 가수 김장훈이 세금 무서워 기부를 않거나 액수를 줄일까.
국회의원의 억지 주장으로 고생하던 기재부 고위 간부가 사석에서 털어 놓은 말이 새삼 떠오른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분들이군요."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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