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군인, 경찰, 자경단으로 역할을 나눠 꼬챙이 같은 막대기를 들고 조선인 역할을 맡은 아이를 찔러 죽이는 시늉의 '자경단 놀이'를 하고 있다. 1923년 9월 19일자 일본 미야코(都) 신문에 실린 삽화다. 윤소영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이 발굴한 이 삽화는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한인학살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관동대지진 한인학살 90주년을 맞아 7일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인학살의 참상이 독일 미술가의 언론 기고로 유럽과 미주에 알려지는 과정과 국제사회의 일본 정부에 대한 진상 규명 촉구(홍선표 책임연구위원) ▲한인학살이 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끼친 영향(이명화 연구위원) ▲일본 지식인들이 일기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참회와 배상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윤 연구위원) 등이 처음으로 발표된다.
발굴자료에는 이밖에 일본 사회주의 계열에서 발행된 잡지 제 1책의 1924년 1월호에 수록된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의 시체더미를 찍은 사진 자료 등도 포함됐다. 당시 학살된 한인의 수는 발표 기관에 따라 최대 6,661명, 최소 400여명으로 추산된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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