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훔치지 말라고 했잖아!" 지난달 초 서울 강북의 한 백화점 유명 의류매장. Y(40ㆍ여)씨가 딸(11)의 뺨을 때리며 무섭게 다그쳤다. 매장 직원이 딸의 가방에서 값을 치르지 않은 20만원 상당의 블라우스 한 벌을 찾아낸 직후였다.
Y씨는 직원이 말을 꺼낼 기회도 주지 않은 채 5분 넘게 딸을 질책한 후 "아이가 손버릇이 좋지 않다. 선처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Y씨가 딸에게 옷을 몰래 건네는 장면을 모두 본 직원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Y씨는 그제야 "아이가 훔쳤다고 하면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 가족 단위 절도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로 모녀, 자매가 모의해 한쪽이 망을 보거나 직원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물건을 훔치거나 탈의실에서 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오는 식이다. 들켰을 때를 대비, 죄를 덮어씌우고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어린 자녀를 대동하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20년 경력의 한 경찰관은 "과거엔 혼자 훔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가족 단위 범행이 많아졌다"면서 "절도 물품도 식료품 의류 등 다양했지만 이젠 고가의 사치품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중고 명품 가방, 의류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면서 '장물 처분'이 쉬워지자 명품 매장을 전문적으로 터는 가족도 등장했다. 장모(31)씨 자매는 지난 1~3월 서울과 부산의 백화점 명품매장 12곳을 돌며 모두 2,500여만원어치 명품을 훔쳤다. 장씨 자매는 20만원 상당의 이브생로랑 가방 끈, 50만원 상당의 보테가베네타 남성용 반지갑 등 크기가 작아 숨겨 나오기 쉬우면서도 고가인 상품을 주로 노렸다. 이들은 훔친 물건을 인터넷을 통해 정가보다 30% 가량 싸게 팔아 이득을 챙겼다. 서울동부지법은 4일 이들 자매에게 각각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족끼리 범죄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가치관이 비슷하고 범죄수익을 나누기도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족절도는 상습범이 많은데 백화점이 이미지 손상을 걱정해 신고를 잘 하지 않은 것이 큰 이유"라며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으면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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