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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교차하는 숲으로, 평창 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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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교차하는 숲으로, 평창 나무 여행

입력
2013.09.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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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숲은 접경의 풍경으로 평화롭다. 미처 가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는 여름도 아닌 그 숲에, 푸르름을 찾아 벅적거리던 발걸음은 끊기고 울긋불긋함을 좇아 떠들어올 사람들은 아직 멀어서, 한 철을 털어내고 오는 계절을 채비하는 나무를 바라보는 일 속엔 어떤 안도감이 있다. 지금 나무가 새삼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분망한 일상에 지친 이에게 이즈음 숲의 농밀한 적요가 위안이 되는 것은. 그러니, 마음 무겁다면 숲에 가볼 일이다. 평창이면 좋을 것이다. 거기 너르디너른 숲의 고요가 당신의 무지근한 두 다리 앞에서도 하염없을 것이다.

밀양 박씨의 녹색 세거지, 원길리 잣나무숲

핏줄에게 재산을 남기려면 이 집안처럼 하면 될 듯하다. 먼저 집안 내력부터. 밀양 박씨의 한 갈래는 본래 함경도 영흥 땅에 세거했는데, 대대로 이웃이던 전주 이씨 집안이 14세기 말 군사를 일으켰다. 박씨 집안은 역성혁명에 가담했다. 공이 컸던지 조선왕조 내내 박씨 집안은 안온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씨의 시대가 저물 무렵, 공조참판 벼슬의 한 박씨가 한양과 가까운 곳으로 이주하기로 마음먹었다. 터를 물색하다 자리를 잡은 곳이 지금 평창 땅에 속한 봉평이다. 한양에서 강릉현으로 가던 길목인 봉평은 예로부터 양반이 모여 살던 곳. 이후 박 참판의 4대 자손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잣나무는 묘목을 심으면 제대로 소출을 얻기까지 최소 40년은 기다려야 해요. 할아버지께서 잣나무를 심으신 까닭은 가산이 아들 대에 흩어져버리지 않고 적어도 손주 대까진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서였겠죠.”

봉평면 원길리에서 캠핑장과 펜션을 운영하는 박정희(54) 아트 인 아일랜드 대표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잣나무숲을 물려받았다. 그의 증조부는 영흥의 부를 봉평의 산과 들로 치환했다. 그리고 조부가 “양반의 후손이 밭일을 할 수 없다”며 유실수를 심었는데 고른 것이 잣나무다. 묘목 식재일 기준으로 지금 두 팔로 껴 안기 힘든 거목은 81살, 우듬지가 아득한 아름드리는 54살, 몸피가 야산에 흔한 소나무 만한 것은 22살이다. 각각 박 대표의 아버지와 박 대표, 박 대표의 아들이 태어나던 때 ‘아들보다 손주를 생각하며’ 당시의 아버지가 심은 것이다. 이 집안의 부는 쉽게 탕진될 일이 없어 보였다.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잣나무숲은 캠핑장에서 2㎞ 정도 거리에 있다. 잣나무는 편백처럼 성격이 돌올한 나무다. 다른 나무와 풀에 곁을 주는 법이 없다. 위에서 잎을 떨궈내려 함께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잡목으로 우거진 숲과 느낌이 사뭇 다른 이유는 그 때문인 듯. 그윽하고 깊었다. 숲에 들면, 사람이 조림하고 간벌까지 한 숲인데도 백두대간의 척수 속인 듯한 태고의 고요가 있다. 그건 사람의 힘이라기보다 나무의 힘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아침 시간, 바닥까지 떨어지는 햇살이 귀했다. 우뚝한 줄기와 촘촘한 가지, 억만의 바늘잎들이 사선의 빛다발을 공중에서 잠식하고 있었다. 잣을 훔치러 온 청설모도 이 숲에선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인적 사라진 마을숲의 침묵, 불발령 잎갈나무숲

“내가 16살 때였지요, 이승복이 죽은 해니까. 아유… 말도 마래요. 곰배골 군인들이 한밤중에 쳐들어와선 갑자기 짐을 싸라는데… 냄비 하나 못 챙겨서, 생국수 씹어 먹으면서 산을 내려 왔더래요.”

평창과 횡성, 홍천이 산주름으로 겹치는 곳에 불발령 마을이 있다. 아니 있었다. 흥정계곡 사십리 물길이 시작되는 곳에 강원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8반, 여기 주민들이 불바래기라고 불렀던 마을이 있었다. 그날 밤 열 살, 여덟 살 두 동생 손을 붙잡고 계곡을 따라 피신했던 이동옥(61)씨의 기억에 따르면 20, 30가구 정도 살았다고 한다. 1,000m 고지에 콩, 팥, 옥수수, 감자를 심어서 파먹고 살던 마을이라니 불바래기라는 이름은 화전(火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짐작은 틀렸다. 한자로 화명동(火明洞)으로 표기하는 불바래기 마을은 멀리 원삼국시대에 뿌리가 닿는다. 맥국(貊國)과 예국(穢國)의 봉수대가 불발령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2,000년 묵은 지명이다. 사라진 지는 45년 됐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마을을 감쌌던 숲은 남았다. 숲의 바람과 계곡의 급류에게 45년이란 시간은 사람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 놓고도 남는 양인 듯했다. 이씨가 손으로 가리켜도 마을의 터를 짐작할 길이 없었다. 다만 나무만이 이곳의 원주민으로 남아 있었다. 이곳에 많은 건 낙엽송, 또는 이깔나무라고 부르는 일본 잎갈나무다. 주민 소개령이 내렸던 1968년 즈음 전국의 야산에 흔히 심었던 수종이다. 일본이 원산지라지만 이제 우리 땅에서 더 흔한 나무다. 생장이 빠른 잎갈나무는 불발령 일대를 반세기 만에 울울한 숲으로 만들었다. 가을이면 환상적인 진갈색의 숲을 보여준다. 숲은 임도(林道)가 난 둔덕보다 흥정계곡 상류를 건너 맞은 편에 더 빽빽하다.

사철 여일한 불발령 잎갈나무숲의 침묵 속으로 들?위해선, 일렬횡대로 늘어선 흥정계곡 펜션촌이 끝나는 곳, 차량 출입을 막은 부분에서 임도를 따라 6㎞ 정도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 수고가 적지 않다. 하지만 반짝이는 물살에 박혀 떨리는 바늘잎의 그림자가, 표범과 삵이 깃들었다는 숲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다리의 피로를 잊게 한다.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1978년 겨울, 제주도로 시집간 여인이 홍천의 친정을 찾아가느라 이 길을 가고 있었다. 갑자기 폭설이 내렸다. 사흘 뒤. 눈 속에 묻혀 숨진 여인의 품 속에 여섯 살 딸이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몇 해 전 엄마가 됐다고 했다. 인적이 끊겨도 이야기는 늘 그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숲길엔, 그러한 사연도 하나쯤은 있어야 합당하다.

평창=글ㆍ사진

[여행수첩]

●평창 아트인아일랜드(www.irispension.co.kr)의 펜션이나 캠핑장에서 숙박하면 원길리 잣나무숲 체험을 할 수 있다. 캠핑장은 흥정천 붓꽃섬 안에 있어 무척 아늑하다. 10㎞에 달하는 숲길을 ATV를 타고 달릴 수 있다. 자체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도 수확할 수 있다. (070)4639-6315 ●불발령은 흥정계곡 상류에 있다. 임도의 차량 차폐시설을 지난 뒤로는 편의시설이 없어 트레킹을 할 때는 마실 물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트레킹 코스는 홍천군 내면까지 이어진다. 흥정계곡 입구에 불발령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허브솔 펜션이 있다. (033)334-4445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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