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에서 열린 가을학기 입학식. 이 학교는 가정형편 때문에, 때론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여성들을 위한 학력인증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착실히 실천하고 지식과 소양 쌓기에 전력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파란색 꽃무늬 셔츠를 입은 이영숙(77) 할머니는 설레는 표정으로 다른 만학도들과 함께 신입생 선서를 했다. 6ㆍ25전쟁 통에 학교를 그만뒀던 이씨가 64년 만에 '77세 여학생'이 돼 학교 문을 다시 두드리는 순간이었다. 신입생 209명 중 최고령 기록과 함께.
"연극과 음악 수업이 좋았어요. 여자 음악선생님이 가르쳐줬던 노래가 있는데, 태평양 큰 물기…".
꿈 많던 경북 풍기중 신입생이던 이씨는 6ㆍ25전쟁으로 입학 한 달 만에 피난을 떠났다. "어머니께서 '난리가 났다'며 장떡과 미숫가루를 챙겨 피난을 갔죠. 돌아와보니 집은 불타고, 어머니께서도 편찮으시고…." 피난길에도 학교에서 나눠준 책이란 책은 바리바리 챙겼을 정도로 향학열이 남달랐던 이씨는 이후 교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들 학교에 다니는데 창피도 하고, 책보 맨 또래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배움에 목말랐던 이씨는 최근 동네 아주머니에게 주부학교 얘기를 듣고 중등부에 입학원서를 내며 늦깎이 도전에 나섰다. 학교까지 꼬박 3시간이 걸리는 경기 가평에 사는 그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버스 두 번, 지하철 한 번을 갈아타야 해서 오전9시40분 첫 수업에 맞추려면 6시 이전엔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도 이씨는 "배울 수 있는데 등하교 시간이 대수나요? 어서 첫 수업을 시작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그는 매주 월ㆍ수ㆍ금요일 40분짜리 수업 4개를 듣게 된다. 과목은 국어, 영어, 한문, 국사, 수학, 과학, 도덕. "기초만 배우다 피난을 가 영어를 잘 따라갈지도 모르겠고 한문도 집에서만 공부를 해서…. 그래도 선생님만 믿고 열심히 하면 길이 보이겠죠?" 가평군에서 실시하는 컴퓨터 수업만 3, 4년을 배웠을 만큼 열정만은 10대 학생 못지 않은 이씨는 "기왕 새롭게 시작한 만큼 검정고시에 도전해서 고등학교 졸업장까지는 받고 싶다"고 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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