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지난 2일 전국의 학부모 1,009명에게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고통 받고 있지 않은 편'이라는 답변은 단 1%였다. 절대 다수인 나머지 응답자는 '매우 고통 받고 있다'(71%), '고통 받고 있는 편이다'(28%)고 답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수학=고통'이다. 학부모들은 그 이유로 '수학 내용이 어려워서'(57%), '배워야 할 양이 많아서'(59%), '학원 선행학습으로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떨어져서'(41%) 등을 꼽았다(복수응답)
교육부의 수능개편시안 중 하나인 '문ㆍ이과 통합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지을 열쇠 중 하나가 바로 수학에 있다. 교육부가 수능 개편의 취지로 내세운 '학교교육 정상화'와 '융합인재 육성'을 실현하려면 고교 교과목 편성에서 비중이 높고, 사교육 참여율도 47.8%로 전체 교과 중 가장 많은 수학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게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현행 수능은 문과생도 미적분Ⅰ을 배우고 이과생은 미적분Ⅱ에 기하와 벡터까지 필수로 배워야 치를 수 있다. 최수일 수학교육연구소장은 "미적분은 이공계 대학교육과정에 포함돼있어 진학하면 또다시 배워야 한다"며 "그런데 우리 고교 수학에는 그보다도 어려운 미적분Ⅱ에다 기하와 벡터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과정이 어렵다 보니 고교에서 수학교육은 파행에 가까울 정도로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일부 고교는 2학년에 수학을 10단위(1단위는 주당 1시간 수업)까지 편성하기도 한다. 2학년에 3학년 진도까지 다 나간 뒤 3학년 때는 본격적인 수능 대비 문제풀이 수업을 하는 것이다.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을 하는 것도 필수다. 이동흔 하나고 수학교사는 "수학은 논리적인 사고를 숫자라는 도구를 이용해 가르치고 우리 일상 생활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학문인데 우리는 대학에서 배워야 할 난해한 개념까지 고교에서 가르치니 '입시대비'라는 기능적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입시만을 대비한 '몰입수업'은 오히려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나 흥미도를 떨어뜨린다. 지난해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가 발표한 '수학ㆍ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 2011)' 결과에 따르면, 중2년생들의 수학과목 학업성취도는 1위였지만, '수학에 자신 있다'는 응답률은 3%로 42개국 중 41위, '수학을 좋아한다'는 답도 8%(41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수학에 쏟아야 할 학습시간과 사교육비가 절대적인 상황이라면 문∙이과 통합안은 성공하기 어렵다. 통합안은 모든 학생들이 공통사회, 융합과학 시험을 치도록 하고 있어 문과생은 사회탐구에, 이과생은 과학탐구에 집중하는 현행 수능보다 오히려 학습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비중을 낮춰야 오히려 다른 다양한 과목에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평론가인 이범씨는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수학은 우리의 중2 수준이고 비중도 작다"며 "대신 한국어에 라틴어까지 있을 정도로 선택과목의 폭이 넓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교육부는 문ㆍ이과 구분 없이 수능을 치르는 통합안을 시행하게 되면 수학은 문과 수준으로 쉽게 출제한다는 방침이다. 대학에서 이과수학 이수를 전형 조건으로 내걸 경우엔 학생부의 내신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내신 따로', '수능 따로' 여서는 실질적인 수학 부담 완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고교단계에서 수학의 난이도와 학습량을 줄이고 사회와 과학 과목의 비중을 높여 균형 있는 학습을 제공해야 한다"며 "이런 전제조건이 해결돼야 문∙이과 통합안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에서 수학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교실에서의 수학도 참모습을 찾게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최수일 소장은 "학생들에게 수학이라는 학문의 참 맛을 느끼게 하려면 사회 현상을 보고 수학적인 사고나 요소를 가미해 글을 쓰고 풀어나가는 논술을 적용한 수업이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대입제도가 바뀌면, 현장 교사들의 수업 혁신 노력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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