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과학 교과서의 내용이 물리ㆍ화학ㆍ생명과학ㆍ지구과학 Ⅰ, Ⅱ 수준을 넘나들고, 분량도 너무 많아 제대로 가르치기가 너무 어렵네요.”(서울 A여고 화학 교사)
“융합과학을 선생님 3명이 나눠서 가르치는데 뒤죽박죽이라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인터넷강의로 보충하는데 인강에서는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것도 학교에서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고1 학생)
현재 교육부가 수능 개편안 중 하나로 검토 중인 문ㆍ이과 통합안이 실현되면 고등학생들은 문ㆍ이과 구분 없이 국어ㆍ수학ㆍ영어ㆍ사회(공통사회)ㆍ과학(융합과학)을 응시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융합과학을 가르치는 고교 교실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공통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육부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고등학교의 84.3%(2,094개교)가 융합형 과학 교과서를 채택했다. 2011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이 배우는 이 융합과학 교과서에는 물리ㆍ화학ㆍ생명과학ㆍ지구과학의 내용이 한데 담겨있다. 학문간 경계를 없앤다는 취지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물리ㆍ화학ㆍ생명과학ㆍ지구과학 교사들이 자기 전공 부분만 떼어내 가르치는, 전혀 융합되지 않은 교육을 하고 있다.
가령 융합과학 교과서의 첫 단원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서는 빅뱅을 설명하면서 원소와 생명의 탄생을 아우른다. 기존 교과서라면 지구과학(빅뱅), 화학(원소), 생명과학(생명의 탄생)에 걸쳐 있는 내용이다. 강대훈 상암고 교사(화학)는 “지구과학만 가르치던 교사가 화학과 생명과학까지 설명하려니 전문성이 떨어지고 학생들도 이해가 어렵다고 한다”며 “화학교사가 화학만 뽑아서 가르치는 등 교사 여럿이 자기 전공 부분을 나눠서 가르치는 학교가 많고, 그럴 바에야 아예 선택하지 않겠다는 학교도 많다”고 말했다. 상암고도 교사 4명이 융합과학 수업을 하고 있다.
한 교사가 전체 내용을 소화해 가르치기에는 융합과학 교과서가 너무 넓고,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서울의 한 여고 이모 교사는 “정말로 의미 있는 융합교육을 하려면 빅뱅에서부터 원소의 구조로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는데 그저 과목별로 한 파트씩 엮어놓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안모 교사도 “고교 수준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과학적 지식이 빼곡히 들어가 있어 보통 학생들은 무조건 외울 수밖에 없다”며 “교과서 내용 자체가 과학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늬만 융합’일 뿐, 사실상 지식을 뒤섞어 놓은 것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융합과학이 수능 필수 과목이 되면 지금보다는 교육현장의 관심이 높아져 교습법이나 교과서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물∙화∙생∙지 Ⅰ, Ⅱ 과목의 수업 시수와 담당 교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문제로 남는다. 현재 교육부의 입장은 주어진 수업시수의 범위 내에서 각 학교에 맡긴다는 것인데, 학교별로 물∙화∙생∙지 교사가 존재하는 숫자에 따라 융합과학을 쪼개 가르치는 파행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통합사회 교과서는 내년 도입을 목표로 현재 개발을 마무리 중인데 융합과학 교과서처럼 다양한 사회분야 지식을 짜깁기한 것이 아닌지, 또 가르칠 교사가 있는지 똑 같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성공적인 융합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준비가 절대적이다. 경기 흥진고의 권희정 교사(영어)는 3년 전부터 마음이 맞는 동료교사들과 학습동아리를 만들어 융합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이를테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배우면서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시구를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거나 조별 번역 프로젝트를 주는 식이다. 영어 수업에 국어와 미술, 음악 등을 접목한다. 권 교사는 “영어를 40점 맞던 학생도 그림을 잘 그려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자 수업 태도가 좋아지고 영어에도 흥미가 생기더라”며 “재능이 다 다른 아이들의 창의지성 역량을 키워주면서 제대로 된 융합수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규상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좀더 쉬운 방향으로 교과서를 새로 쓰고, 교사간 연구모임을 통해 비전공 과목의 내용을 공유하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가르칠 것인지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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