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해외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이용한 역외탈세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5월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자료를 토대로 버진아일랜드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잇달아 발표한 게 촉매가 된 셈이다. 다만 국세청이 확보한 400GB 분량의 원자료는 조세피난처 과세정보 교류합의 등에 따라 미국 영국 등 당국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전두환ㆍ김우중씨 아들들의 혐의도 있다니 조사의 귀추가 주목된다.
국세청 조사는 6월부터 시작됐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케이만제도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267명의 한국인 신원을 확인해 탈세가 확인된 11명에 대해선 이미 714억원을 추징했다. 별도 혐의자 28명에 대한 조사는 진행 중이라고 한다. 원자료에서 추출된 한국인들의 직업별 분포를 보면 기업가나 금융인 외에, 부동산업자나 전문직은 물론 교육자까지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역외탈세 행태가 사회 각 부문에 걸쳐 확산됐음을 보여준다.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곧바로 탈세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하지만 페이퍼컴퍼니가 탈세와 횡령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는 건 분명하다. 기업인 A씨는 버진아일랜드에 복수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그 회사로부터 산업폐기물을 고가의 원재료인 것처럼 위장 수입해 기업자금을 빼돌렸다. 기업인 B씨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후 그 회사가 투자한 별도 외국법인으로 하여금 국내 기업의 해외현지법인이 생산한 제품의 중계무역을 맡긴 후 소득을 페이퍼컴퍼니에 귀속시키는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를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조세정의 확립의 계기로 삼겠다지만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뉴스타파가 이미 발표한 관련 한국인 명단만 해도 수백 명에 이른다. 최소한 그 때 거론된 주요 인사들의 혐의 만이라도 철저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잇단 수뢰 추문으로 국세청의 권위가 적잖이 손상된 만큼, 이번 조사가 세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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