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긴장모드전체사용량 절반 이상 불구 주택용의 75% 가격에 공급… "요금 불평등 개선" 목소리"1%만 올려도 큰 타격" 철강·화학업계 등 볼멘소리
전기요금 개편논란이 불 붙고 있다. 여름철 전력고비가 지나자 새누리당 에너지특위는 지난달 21일 전기요금 체계개편안을 제시했고, 조만간 정부도 최종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내놓은 안에는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요인인 '누진제 완화'와 '연료비 연동제 시행'만이 들어있을 뿐, 훨씬 값싼 산업용 요금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즉각 "개인들만 봉이냐"는 비난여론이 일었고, '제2의 중산층 증세파동'을 우려한 여당은 "추가대책을 내놓겠다"며 산업용 요금도 건드릴 의향을 비췄다. 그러자 이번엔 산업계가 반발하고 있어 뜨거운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요구에는 형평성 논란이 깔려 있다. 실제로 현행 전기요금 체계를 뜯어보면 '친기업적' 요소가 많은 게 사실. 2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용 요금 판매단가는 시간당 1㎾를 쓸 때 92.83원으로, 주택용(123.69원)의 75%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해 전체 전력판매량 중 산업용 전기는 2,581억㎾h로 55.3%를 차지했고, 주택용(654억㎾h)은 14.0%에 그쳤다. 기업들에겐 싸게 많이 팔고, 가정엔 적게 팔면서 상대적으로 비싼 값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블랙아웃까지 걱정케 하는 전력과소비의 원인은 에어컨을 펑펑 쓰는 일반 가정이 아니라 저렴한 산업용 전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감사원의 공기업 감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감사원은 2008~2011년 산업용 전기요금이 원가 대비 85.8% 수준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국내 대기업의 경쟁력이 대폭 강화됐고 제조원가 중 전력비 비중이 1995년 1.94%에서 2011년 1.17%로 낮아져 전기요금 부담이 줄었는데도, 한국전력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총괄원가보다 낮게 책정해 전기 과소비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감사원은 특히, 2011년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100이라고 할 때, 일본은 244, 독일은 214, 영국은 174, 프랑스는 166으로 나타나 주요 경쟁국보다 훨씬 싼값에 우리 기업들이 전기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주거부문 1인당 전력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5배에 불과한데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OECD 평균의 1.75배에 이르는 것은 산업용 전기의 과다 소비 때문"이라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었다. 전기료를 올리더라도 가정용보다는 산업용이 먼저라는 얘기다.
산업계는 현실론을 앞세워 대폭적인 요금인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 전기다소비 업종인 철강업계 관계자는 "제조원가의 25%가 전기요금으로 나간다. 요금을 1%만 올려도 수익에 큰 타격이 온다"고 말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도 "해외에선 '공짜로 전기를 쓰게 해 주겠다'며 공장 유치에 나서는 마당에 전기요금을 계속 올리면 결국 해외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10월 전기요금체계 개편에서 어떤 형태로든 산업용 요금인상 자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요금을 올릴 경우 개인보다는 기업의 '저항'이 훨씬 적다는 측면에서도, 정부로선 산업용 요금인상이 훨씬 손쉬운 선택이다. 현재로선 인상 폭이나 피크시간대 요율 등 구체적 인상내용이 오히려 관건인데, "결국은 기업들의 반발강도에 의해 정해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가정은 격앙모드"전력난 호소에 찜통 참아 2년 새 세 차례 인상 릴레이… 봉처럼 여기는 것 용납 못해""OECD 평균보다 저렴해도 누진제 완화 등에 촉각 곤두
10월 전기요금 체계 개편의 또 다른 뇌관은 주택용, 곧 일반 가정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요금이다. 사상 최악의 여름철 전력난을 "이번만 참아달라"는 정부의 대국민 절전 호소, 다시 말해 국민의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넘기자마자 또 다시 요금 인상에 나설 경우 전력정책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올해 1월 주택용 요금을 2% 인상했다. 2011년 8월 2%, 지난해 8월 2.7% 인상까지 합하면 최근 2년 간 세 번이나 요금을 올린 셈이다. 서민부담 완화를 고려해 전체 평균 인상률(4~4.9%)보다는 낮은 인상폭을 적용하긴 했으나, 9개월 만에 또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국민들 입장에선 '요금 인상 릴레이'라고 여길 법하다.
전력당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전기요금 현실화'다. 지난해 주택용 전기요금의 원가 보상률은 92.8%로, 산업용(89.4%)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생산원가에는 못 미친다.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싸다. 2010년 기준으로 시간당 1㎿h를 사용할 때 83.17달러로, OECD 평균(158.48달러)의 52%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115.76달러) 프랑스(165.27달러) 영국(184.20달러)에 비하면 절반, 일본(232.15달러)의 3분의1, 독일(318.74)과 비교하면 4분의1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기본요금' 기준이어서 현행 6단계의 누진제를 적용할 경우,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는 1단계와 6단계의 요금 차이가 11.7배에 이르는 반면, 일본은 1.4배, 미국은 1.1배에 그치는 것을 감안할 때 실제 요금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있다. 앞으로 전력수급 정책 방향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수요 관리가 돼야 하며, 수요를 줄이기 위한 근본대책은 결국 요금 인상 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주택용이든, 산업용이든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저렴한 결과, 전력난과 전력수급이 기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전기요금 인상분은 한국전력의 수익이 아니라 수요관리나 에너지 신산업 육성 등에 투자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요금 인상 외에 여당과 정부가 추진 중인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연료비 연동제 시행도 변수다. 누진 구간을 현행 6단계에서 3단계 또는 4단계로 축소하거나 연료비 상승분이 요금에 반영될 경우, 결국엔 일반 서민들의 요금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