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외환위기 당시 동양그룹은 존립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룹 주력이었던 종합금융사(동양종금)을 비롯한 금융계열사들이 부실악화로 퇴출 직전상태에 몰렸지만, 정부는 "주인 있는 금융사에 공적자금 투입은 없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방침을 통보했다. 결국 동양그룹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체 자금을 금융계열사에 쏟아 부었고, 가까스로 위기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워낙 출혈이 심했던 탓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꿈도 사실상 접어야 했다.
그로부터 15년. 동양그룹이 또 한번 휘청거리고 있다. 발단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건설경기 부진. 부채는 4조4,000억원을 넘어섰고, 부채비율은 무려 1,233%까지 치솟았다. 작년부터 자산매각을 통해 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시장의 반응은 점점 더 냉담해지고 있다.
동양그룹은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며 미래주력사업의 지분 일부까지 내놓은 상황. 15년 전에 이어 현 회장이 또 한번 위기탈출을 이뤄낼 수 있을지 재계도 주목하고 있다.
동양그룹은 유동성확보를 위해 400억원 규모의 동양시멘트 폐열발전소를 매각했다고 2일 밝혔다. 이미 동양네트웍스가 가진 오리온주식을 1,600억원에 팔았고, 동양시멘트 등이 가진 선박, 창고, 레미콘공장 등을 처분했으며, 한때 주력사였던 동양매직 매각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룹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팔 수 있는 자산은 모두 판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동양그룹은 심지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에너지 부문의 지분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동양그룹은 구조조정 이후 미래 핵심 먹거리 사업으로 에너지사업을 선정, 현재 강원 삼척시에 대규모 민간화력발전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지분까지도 일부 팔아 유동성을 확보키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지난달 29일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및 등급전망이 한꺼번에 강등된 데 이어 이번엔 '10월 위기설'까지 돌고 있는 상태다. 계열사가 발행한 투자부적격 등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투자자에게 팔 수 없도록 한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이 10월부터 시행되는데, 이렇게 되면 동양증권은 이미 '정크본드'수준이 된 동양그룹 회사채를 팔 수가 없다. 그 동안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주로 동양증권을 통해 소화해온 동양그룹으로선 자칫 자금줄이 막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 증권시장 관계자는 "동양증권이 아니라면 현재 동양그룹의 채권을 취급할 증권사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양그룹의 회사채는 계속 만기가 돌아온다. 올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동양의 회사채는 약 1,350억원. 여기에 금년 신규발행 물량 중 10월에 조기상환청구가 가능한 물량(900억원)까지 고려하면 올해 안에 동양이 확보해야 할 자금은 2,000억원이 넘는다. 내년 상반기에는 3,6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현재로선 동양그룹의 위기탈출방안은 자산매각에 더 속도를 내는 것뿐이다. 동양매직(약 2,500억원)과 동양파워(약 5,000억원) 등 덩치가 큰 계열사들이 순조롭게 매각된다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44개 중 21개를 매각한 레미콘 공장 역시 매각이 완료되면 1,200억 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빚을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시킨다면, 회사채 만기연장이나 차환발행도 가능할 것이고 시장의 위기설은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다는 게 동양측 생각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로선 팔고 줄이는 것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며 "이를 통해 시장에 퍼진 불신만 해소된다면 충분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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