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7일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서초동 우면산 산사태가 집중호우에 따른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수정될 전망이다. 120년만의 기록적 폭우 때문에 산사태가 났다고 판단했던 연구진이 기껏해야 20년만의 폭우로 수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우면산 산사태 원인 분석 연구용역을 맡은 대한토목학회는 지난해 12월 서울시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당일 오전 9시를 산사태 발생 기준시점으로 잡아 "당시 남현동에 120년, 서초동에 20년 빈도의 많은 비가 내려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20년 만의 폭우로 인한 천재(天災)로 우면산 산사태 사건을 잠정 결론지었다.
하지만 2일 피해자 유족과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대한토목학회 연구진이 산사태 발생시간을 오전 7시 40분~8시로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을 지난달 28일 서울시에 제출했다. 연구진은 의견서에서 "산사태 현장 영상, CCTV, 목격자 진술, 119 신고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애초에 서울시에 인명피해 신고가 접수된 오전 8시 41분을 최초 신고 시점으로 보고했지만, 지난 2월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에서 오전 7시 37분에 처음 배수로에서 물이 넘친다는 비상재난접수를 받았다고 시점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산사태로 아들을 잃은 임방춘(66)씨 등 피해자 유족들과 전문가들은 당일 오전 119 최초 신고가 7시 37분으로 명시된 점, 산사태 목격자들의 진술이 오전 7시 40~58분으로 일관된 점 등을 들어 방재센터에 끊임없이 수정을 요청했었다. 결국, 방재센터는 올해 2월 서울시에 최초 신고 접수시간을 앞당겨서 보고했다.
토목학회 보고서가 애초에 산사태 발생시점으로 잡은 오전 9시를 기준으로 하면 남현관측소의 경우 시간당 최대 강우량은 114.0㎜여서 120년만의 폭우에 해당되지만 오전 7시40분~8시의 경우 시간당 최대 강우량은 53.0~86.5㎜에 불과해 5~20년 빈도에 불과하게 된다. 서초관측소를 기준으로 해도 시점을 앞당기면 시간당 최대 강우량이 87.0㎜(20년 빈도)에서 42.0~62.5㎜(5년 이하 빈도)로 줄어든다. 결국 산사태가 천재라고 결론지은 종전의 보고서는 인재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수정돼야 하는 셈이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보고서를 쓴 당사자가 핵심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어서 천재라는 주장 자체가 신뢰성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많은 비가 내린 것은 맞지만 120년 만의 큰 비로 인한 천재가 아니며, 인재의 요소가 크다는 쪽에 무게 중심이 쏠리게 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관계자도 "내부적으로 부분적 인재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천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서초구도 "상황을 파악해보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서울시는 서울연구원의 수정ㆍ보완된 최종 보고서를 받아 검토한 뒤 이르면 10월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최종 보고서가 나오면 관내 시설물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유족들이 서울시와 서초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도 급진전될 전망이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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