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페이스북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은행강도 이야기가 있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풍자와 고발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배경은 중국, 주인공은 형과 동생. 무장한 형제가 은행에 들어가 "움직이지 말라. 은행 돈은 정부 돈이고, 여러분 목숨은 여러분 것이니 조용히 있으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소리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져 순순히 따랐다. '은행 돈은 나와 무관'이라는 프레임의 힘이었다.
▲ 그래도 한 할머니가 비상벨 쪽으로 움직이려 했다. 강도 형제는 "어머니, 품위 있게 행동하세요,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주저앉았다. 품위라는 말로 고발의 의무감을 없앤 것도 프레임 기법이다. 형제는 가방에 잔뜩 돈을 집어넣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을 나온 동생이 돈을 세보려 하자 초등학교만 나온 형이 "오늘 밤 뉴스에 나올 테니 굳이 수고하지 마라"고 했다. 학력보다 경험이 더 유용한 경우가 많다는 시사였다.
▲ 이상하게도 저녁 뉴스에 강도 사건이 나오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뉴스에야 100억 원을 강탈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너무 액수가 커서 형제는 돈을 세고 또 셌는데 20억 원 정도였다. 어찌 된 일일까. 80억 원의 비밀은 은행 직원들이 쥐고 있었다. 강도가 나간 직후 직원이 신고하려 하자 지점장은 "잠깐! 일단 10억 원은 우리 몫으로 해놓고 그 동안의 횡령과 손실 70억 원을 메우자"고 한 것이다. 지점장은 조치를 다 끝낸 뒤 신고를 했다.
▲ 진짜 강도는 누구일까. 직접 돈을 강탈해간 형제도 강도고 시스템을 활용, 위기를 불법적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기회로 삼은 지점장도 강도다.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많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수사가 전개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형제 강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프레임과 시스템을 장악한 자는 검은색을 흰색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른 사회라면, 형제 강도도 처벌하고 지점장도 단죄해야 하지 않을까?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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