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업계가 사상 최악의 업황 부진에 빠져 있는 가운데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 증권 유관기관들의 방만 경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사장이 공백인 시기에 대규모 승진 인사를 단행하는가 하면 악화된 경영실적에도 아랑곳 않고 임원들에게 전년보다 늘어난 고액 연봉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부부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12명을 포함해 총 46명이 한 단계 높은 직급에 올랐다. 이번 인사에서는 작년 31명, 2011년 25명에 비해 승진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 그런데 거래소의 지난해 순이익은 1,222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53.3%나 급감했고, 올해 수익 구조는 더 악화된 상태다. 더구나 거래소가 올 7월 지수 지연 송출, 야간선물 시장 조기 폐장 등 전산사고가 잇따르면서 장기간 이사장 부재로 인한 조직 기강해이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승진이 거래소의 이사장의 공모 절차가 재개된 시점에 이뤄진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이사장 부재를 틈타 승진 잔치를 벌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승진 인사는 이사장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가성적에 따라 진행되며 8월에 시행해야 한다는 법규에 따른 것일 뿐"이라며 "명예퇴직자 등이 포함돼 인사 규모가 늘어났다"고 해명했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거래회사 등을 대표하는 금융투자협회는 임원들의 고액 연봉과낙하산 인사로 빈축을 사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정무위원장)이 이날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장의 올해 연봉은 5억3,240만원에 달했다. 성과급 2억5,000만원이 포함된 금액으로 기본급(2억8,170만원)도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18평 규모의 사무실, 개인비서 3명, 3800㏄급 대형승용차도 제공되고 있다.
상근부회장과 자율규제위원장의 연봉도 성과급 포함 각 3억6,32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퇴직 후 1년간 고문으로 위촉하도록 돼 있는 황건호 전 회장에게도 매월 500만원의 급여와 15평 개인사무실, 3,800㏄ 승용차, 비서 및 운전기사, 차량유지비(월 110만원)가 지원됐다. 금투협 간부 상당수가 관료 출신이라는 점도 비난을 받고 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금투협은 과장급 이상 임직원 가운데 7명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출신으로 채워졌다. 김정훈 의원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설립된 민간 자율규제기관에 당국 출신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포진돼 있는 것은 금융투자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증권 유관기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예탁결제원 김경동 사장의 지난해 연봉은 3억1,203만원으로 2011년 2억6,675만원보다 크게 늘었다. 하지만 예탁원은 작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서 전년 A등급에서 두 단계 떨어진 C등급을 받았다. 거래소의 계열사인 코스콤 역시 기관장의 연봉이 2011년 3억9,407만원에서 지난해 4억1,316만원으로 상승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대부분 증권사들이 성과금은커녕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실정인데 투자자들이 주식을 거래할 때 내는 수수료나 금융투자업체들이 내는 회비로 돈을 버는 공공기관이나 협회가 방만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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