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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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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바람이 분다'

입력
2013.09.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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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수작이다. 슬프고 아름답고 경이롭다. 서러운 사랑이 있고 집념 어린 삶이 있다. 시대의 풍경을 담아낸 섬세한 그림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일 만하다. '지브리 왕국'을 건설한 70대 노대가의 최신작답다. 하지만 이 영화, 불온하다. 아름답기에 더 위험하다.

지난 1일 급작스레 은퇴를 선언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는 표면상 문제적 영화는 아니다. 자신의 꿈과 사랑을 위해 순정하게 한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낸 주인공의 삶 자체는 보편적 공감을 부를 만하다.

영화의 배경은 군국주의로 치닫던 20세기 초반 일본이다. 소년 시절부터 비행기에 매혹돼 비행기 설계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가 스크린의 중심을 차지한다. 전쟁의 시대 자신이 개발한 꿈의 도구가 악몽의 흉기로 돌변하는 상황을 지켜 본 호리코시를 붓 삼아 일본의 옛 자화상을 그려낸다.

바람은 이 영화의 제재이자 핵심어다. 바람은 불가해한 인생을 의미하며 예측 불허의 시대를 뜻하기도 한다. 바람 덕분에 지로는 인생의 여인 나호코와 첫 만남을 맺고 바람으로 인연을 다시 이으며 바람 때문에 그가 개발한 비행기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고 영화는 말하려 한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은 종종 호리코시의 꿈 속에 등장해 묻는다. "아직도 바람이 부냐"고. 그리고 "살라"고 당부한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카프로니의 조언을 따라 격동의 시기를 살아낸 호리코시는 당대 일본 엘리트를 상징한다. 그들은 "열강보다 20년은 뒤졌다"는 열패감에, "굶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안타까움에 조국의 불행을 극복하고자 촌각을 다투어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영화는 웅변한다. 호리코시가 연인 나호코에게 던지는 대사 "누가 바람을 봤는가. 나도 그대도 보지 못한다"는 상징적이다. 그저 시대가 불행해 호리코시가 개발한 전투기 제로센은 대량 학살의 도구가 됐고 가미카제의 실행 무기가 됐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듯하다. 미야자키는 그렇게 바람을 탓하며 20세기 전반 일본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유예하려 한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모험' 등 숱한 수작으로 명성을 쌓은 미야자키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상처 입은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영화 속 장면들과 대사들은 대재난의 바람 속에서도 살아있으라는 당부로 종종 읽힌다. 650만 일본인이 미야자키의 위로에 화답하며 이 영화는 일본에서 6주 연속 관객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현해탄을 건너면 그런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 관동 대지진 발생 뒤 호리코시의 친구는 바람에 날리는 불씨를 보며 심드렁하게 말한다. "불이 옮겨 붙을 거야. 도쿄는 이제 파멸이야." 바람을 타고 도쿄에 대화재를 일으킨 그 불씨는 결국 조선인의 대학살까지 유발한다. 영화는 올해 90주년을 맞은 관동 대학살도 시대라는 바람 탓으로 돌리려는 듯하다. 요컨대 '바람이 분다'는 한국인이라면 마냥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영화이다. 5일 개봉, 전체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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