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기도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가뜩이나 시끄럽고 어지러운 정국에 이 사건은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처음부터 저런 사람이 무슨 국회의원일까 싶었는데, 그는 결국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야는 물론 각종 단체가 이 문제에 대해 연일 논평을 내고 있다. 내란음모사건이라는 국정원의 발표가 떨떠름하고 수사시기도 묘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모두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선진화개혁추진회의(선개추)가 발표한 논평의 제목을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선개추는 논평에서 국정원과 검찰 경찰이 반국가 음모를 낱낱이 파헤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이어 야당에 대해 “앞으로 진행되는 수사에 적극 협조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그 면모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보다시피 본문 내용엔 전혀 이상이 없다. 문제는 ‘야당은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적극 협조하라!!’는 제목이다. 아니, 이석기를 도와서 내란음모를 함께 하라구? 이석기에게 적극 협조하라구?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내란음모사건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는 건데, ‘수사’라는 말을 빠뜨려 이상해진 것이다.
선개추 측이 제목을 수정해 다시 논평을 내지 않는 걸 보면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입에 밴대로, 상투적으로 말하다 보면 빚어지는 실수다. 말이 좀 잘못됐더라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대한 문제는 잘못이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틀린 게 없는지 또 따져봐야 오해를 사지 않는다. 기자들 중에서도 경제사범 사건을 보도하면서 흔히 ‘특정경제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쓰는 녀석들이 있다. 특정경제를 처벌해? 아니 경제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처벌한다냐? 살리지는 못할망정. 그 기사는 ‘특정 경제범죄’를 잘못 쓴 것이다.
그런 건 또 있다. 거의 30년 전에 어느 신문사의 노조가 언론자유 쟁취를 위한 시위를 할 때의 일이다. 한 간부가 앞장서서 구호를 외쳤다. “언론자유 중지하라!” “민주언론 쟁취하자!”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 외쳤다. 내가 그걸 듣고 있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배를 쥐고 마구 웃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잡아먹을 듯이 나를 노려봤다.
도대체 그게 말이 되니? 언론자유를 중지하라는 데 어떻게 안 웃어? 그 사람이 말하려 했던 건 “언론탄압 중지하라!”인데 너무 언론자유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엉뚱한 구호를 외치게 된 거고,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따라서 외친 것이다. 그 바람에 언론탄압을 하는 당국을 도와준 꼴이 됐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몇 가지 사례는 그런대로 다 참아줄 만하다. 잘못 말했다 해도 무엇이 본의이고 뭘 주장하려는 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로 열 받는 건 ‘음주 단속’이다. 경찰은 걸핏하면 ‘음주 단속’이라고 씌어 있는 안내판을 도로에 세워 놓고, 지나가는 차를 세워 운전자들의 혈중 알코올을 측정하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이 술 마시면 안 되는 나라야? 음주 단속이 대체 뭐야? 나는 늘 이런 반감 때문에 경찰관들에게 뭐라고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경찰은 전혀 고쳐 쓰지 않는다. 음주운전을 단속해야지 왜 음주를 단속하느냐고! 왜 술을 못 마시게 하느냐고!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경찰에 대해 강력하게 외친다. 음주단속 중지하고 음주운전 단속하라!!! 설마, 이 말엔 잘못이 없겠지?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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