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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녹취록 파장] 진보 진영 "종북세력과 절연 못해 이석기 사태 초래" 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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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녹취록 파장] 진보 진영 "종북세력과 절연 못해 이석기 사태 초래" 자성

입력
2013.09.0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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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진영 내에서 그간 진영론과 정치공학적 선거 연합에 매몰돼 종북 세력과 절연(絶緣)하지 못한 것이 '이석기 사태'를 키웠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비밀회합 녹취록 공개로 확인된 진보당 당권파의 종북성은 이미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부터 제기된 해묵은 과제였다. 진보당 당권파는 민노당 시절부터 당권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이 주류로, 이 의원이 배후 핵심이다.

당시 당권파가 일심회 간첩사건에 연루된 당원 2명을 비호하며 이들의 제명 안건을 부결시킨 게 직접적 계기였다. 과거 주사파 출신 인사들이 많은 데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모호한 태도로 북한 체제를 여전히 추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던 차에 스스로 종북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비당권파는 결국 당권파를 '종북파'로 규정하고 결별해 신당을 창당했다. 과거 민노당에서 활동했던 비당권파의 한 인사는 "녹취록을 보면 민노당 시절부터 제기돼왔던 당권파의 종북성이 이제야 민 낯 그대로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당권파의 종북성은 그러나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내에서 흐지부지 묻혔다. 노회찬 심상정 등 분당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친노 계열의 국민참여당까지 아예 당권파와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한 데 이어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야권 전체가 당권파와 손을 잡으면서 내세운 명분은 이명박정부 심판과 정권교체였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당시 야권연대를 밀어붙인 사람들은 총선과 대선을 수구 냉전 세력과의 한판 대결로 봤다"며 "당권파의 위험성을 감지하고도 당장의 정권교체를 위해 문제를 덮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보수세력에 반대하면 다 내 편'이라는 진영 논리도 한 몫 했다. 김 소장은 "같은 야권이라는 이름 하에 사상 이념적으로 퇴행적인 세력들을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감싸 안았다가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2008년 분당 이후 정치적 존재감을 잃어가던 당권파는 이 같은 야권연대 과정을 통해 영향력을 다시 키웠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진보당은 야권연대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전면 폐기 등 정책적 좌클릭을 주도한 데 이어 4ㆍ11 총선 비례대표 득표율도 10.3%에 달해 비례 의원 6명을 당선시켰다. 이 의원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야권은 4ㆍ11 총선 뒤 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가 터지면서 당권파와 다시 거리를 두긴 했으나, 당권파가 내란 모의 수준의 종북성을 가진 것이 드러남에 따라 야권 전체가 정치적 책임론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오늘의 사태는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연대와 단일화에 목을 맨 민주당에서도 책임이 있다"고 한탄했다. 당시 야권 연대를 주창했던 한 인사는 "이들이 이 정도까지 황당한 생각을 하는지 어찌 알았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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