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시작인데 이제 한 풀라카니 갈 때가 돼부렀어. 그래도 내가 서울에서 승무를 추니까 아직 살아 있구나, 용기를 얻어."
'우리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들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붙은 '해어화'(解語花ㆍ말을 알아듣는 꽃) 공연에 출연하는 권명화(79)씨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해어화는 기생을 가리킨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12일 LG아트센터에서 여는 이번 공연은 권번(券番)에서 기예를 익힌 이 시대 마지막 해어화 3인을 한 무대에 세우는 자리다. 대구 대동권번 출신의 권씨와 더불어 군산 소화권번 출신의 장금도(85), 부산 동래권번 출신의 유금선(82)씨가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앞두고 만난 권씨는 한평생 춤을 추고도 "발에 힘이 없어 디딤새가 엉뚱한 데 설까 봐 떨린다"거나 "손에 땀이 나 북채를 놓쳐 주우러 다니면 어쩌냐"고 걱정을 늘어놓을 정도로 춤을 향한 열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북 김천 세습무가 출신인 권씨는 흥을 타고났다. 초등학생 때 화전놀이 무리를 보면 "춤을 저리 추면 안 되는데 하고"하고 읊조릴 정도로 무작정 춤이 좋았던 그는 16살 무렵 6ㆍ25 전쟁 발발로 대구로 피난을 가면서 이웃한 대동권번의 무너진 담 너머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도강에 만족할 수 없어 급기야 아버지 도장을 훔쳐 찍은 승낙서를 권번에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한테 이거(춤)한다고 많이 두드려 맞았다"며 웃었다.
그렇게 그는 소리꾼이자 춤꾼으로 유명한 박지홍(1889~1961) 명인의 제자가 됐다. 박동진 명창이 그에게서 '흥보가'를 배웠고 권씨는 박지홍 명인의 유일한 춤 전승자다.
욕심도 많았다고 했다. "팔을 천 번 만 번 들어 춤을 연습했다"는 그는 "공부 많이 했다는 요즘 젊은 아이들이 그만큼 절실히 연습해서 나오는 게 예술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술은 남이 알아줘야지 내가 조잘거린다고 예술이 되나. 우리 전통예술은 내 몸에 착 안겨야 하는 것이지. 내 몸에 있는 끼 그대로 몸이 가자 하는 대로 가는기야." 춤이 되니 소리에도 욕심이 났다. "옛 명창들은 똥물을 마시고 연습했다"는 스승의 말을 듣고 이를 실행에 옮겨 죽다 살아난 기억도 있다.
대구 무형문화재 9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그가 이번에 보여줄 춤은 승무다. 살풀이춤에 비해 자주 추지 않았지만 그가 '박지홍의 제자'로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춤이다. 그는 "힘이 부쳐서 절반만 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팔순에 추게 될 승무를 걱정하면서도 "염불 장단에서 불교의 위세가 느껴지지 않으면 맛이 없다"며 "코가 시큰시큰한 감정의 맛이 나야 한다"는 설명을 금세 덧댔다.
소고춤도 함께 준비 중이다. 공연 당일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즉흥 놀음이다. "순서를 정해 추는 춤은 매스게임에 불과할 뿐"이라는 그의 말에 공연 기획자인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이 "전통은 전통에서 새 것이 돋아나는 순간에서 나온다"고 말을 보탰다.
이번 공연에서 장금도씨는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는 민살풀이춤을 춘다. 유금선씨는 춤에 능할 뿐 아니라 판소리, 가곡, 가사, 시조까지 못하는 게 없다. 특히 구음이 일품이어서, '나니낫 디리리' 하고 그가 구음을 내면 목석 같은 사람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바, 춤을 부르는 소리로 유명하다. 예기 출신의 세 명인 외에 하용부(밀양북춤), 김운태(채상소고춤), 김경란(교방굿거리춤)씨가 함께 무대에 선다. 이성훈씨는 유금선씨의 구음에 맞춰 동래학춤을 춘다.
진옥섭 감독은 "명인들이 여든 안팎 고령이라 장차를 장담할 수 없는 판"이라며 "공연이기를 포기하고 발표에 그치는 전통 공연이 많은 이때 예술이라는 미명 하의 나태함과는 거리가 먼, 한 인간이 쌓아온 지고의 화려한 예술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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