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이 1∼2% 대에 머무는 등 우리경제의 부진한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이니 세계경제 침체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이에 더하여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결국 우리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하는데 그 기본방향은 무엇보다 '혁신'에 있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바와 같이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물적자본의 축적이 주된 성장동력이 되지만 경제가 발전할수록 생산성 및 혁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러한 혁신은 주로 기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중소⋅벤처기업을 통한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금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대기업도 혁신을 추구한다. 기존의 기업이나 제품을 그대로 모방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기업이 크든 작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과 달라야 한다는 점에서 '혁신'은 기업의 생존 요건이 되는 셈이다. 새로운 전자제품,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만든다고 할 때 기존의 것들보다 성능이 더 좋거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같은 성능, 같은 기능이라면 생산공정을 효율화해 가격이라도 낮춰야 한다. 조그마한 식당을 개업하더라도 메뉴가 다르던지, 조리법이 다르던지, 아니면 식당 위치라도 달라야 한다. 기존 상품이나 서비스와 차별화되는 정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이윤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며 회사 문을 닫을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혁신 또는 차별화에는 벤처기업과 같은 중소기업이 더 적합하다. 미국 시카고대 라구람 라잔 교수는 성숙한 대기업이 혁신에 뒤처지는 여러 원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선 혁신에 대한 절박함이다. 현금흐름이 좋은 대기업은 새로운 상품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당장 망하지는 않기 때문에 혁신을 게을리 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이 커지고 여러 부서가 생기면서 관련 절차가 복잡해지거나 관료주의가 심해질 수도 있다. 미국의 대기업인 제록스의 연구실에서 개발된 여러 첨단 기술들이 경영진의 오판으로 상용화되지 못한 것은 유명한 사례이다.
중소ㆍ벤처기업의 경우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즉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상용화할 자금이 부족하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자금을 대줄 곳이야 많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 중소기업이나 자기네 아이디어가 좋다고 할 텐데 차별화된 아이디어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은지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또한 차별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커지는 반면 사업이 망했을 때의 청산가치가 낮아지는 문제도 있다. 차별화된 사업일수록 이에 필요한 인력이나 설비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 사업에 맞춤형으로 인력이나 설비를 개발하는 경우 동 사업이 망했을 때 청산가치가 낮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전자제품을 만드는 사업에 기계설비 하나만 필요한데 이 설비가 다른 용도로는 쓰이지 못한다고 해보자. 이 기계설비는 담보물로 사용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사업이 망했을 때의 가치가 '제로'가 되기 때문이며 이 문제로 인해 대출계약이 무산될 수도 있다.
결국 벤처ㆍ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단순한 대출계약으로 해결되기 어려우며 이들의 사정을 잘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증권을 설계하는 고도의 금융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들이 벤처ㆍ중소기업의 인력이나 기술을 탈취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압박으로부터 중소기업들을 보호하는 것도 중소기업 금융서비스의 한 가지이다. 정부가 대기업의 부당한 행위를 금지⋅처벌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대기업-중소기업 간에는 정부의 법률이나 규제로 통제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중소기업 금융은 우리경제를 위해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어떻게 제도화하고 설계해야 할지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