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의 내란음모 혐의 등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수사 소식에 오랜만에 형법 교과서를 펼쳤다. 내란음모죄의 기본범죄인 내란죄는 '국토 참절 또는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이라는 범죄다. 이중 '국토 참절'은 일반적 개념의 내란으로 이해하기 쉽다.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불법 지배를 가리킨다. '국헌문란'은 국가의 기본조직이나 통치작용의 파괴ㆍ변혁은 물론이고 헌법기관의 전복이나 기능 정지까지를 포괄한다.
▲ 이른바 '지하혁명조직(RO)'의 5월12일 회합 녹취록 내용만으로도 내란음모 혐의는 엷지 않다. 구속영장 등에 나타난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 음모' 가운데 '폭동'은 '다수가 결합한 폭행ㆍ협박'이며, 그 정도에 대해 판례는 '일체의 유형력 행사나 외포심을 일으키는 해악의 고지 등 최광의(最廣義)의 폭행ㆍ협박'으로 보았다. 이에 비추어 같은 판례의 '한 지방의 평온할 해할 정도의 위력'은 '국지적 평온이라도 해할 정도'라는 소극적 요건이다.
▲ 녹취록에는 남북의 정면 대치로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팽배했던 당시 북의 군사도발을 후방에서 측면 지원하기 위한 RO의 다양한 전술전략 검토가 담겼다. 내란음모죄의 '음모'는 의사의 교환과 합의여서 단순한 의사표시나 전달, 교환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의원이 강연과 질의응답, 마무리 발언을 했지만 대부분의 끔찍한 말은 다른 참석자들이 했다거나 의견교환은 있었지만 합치된 결론은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합의를 부인하려는 것은 섣부르다.
▲ 의사교환이나 합의의 일반적 형태인 회의나 계약이 반드시 공간ㆍ시간적 일치를 요하지 않으며, 의사표시 방법도 현장에서의 말에 한정되지 않고 전화나 인터넷, 서신 등으로 다양하다. 합의 또한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다만 그런 합의가 있었더라도 판례가 요구한 '객관적으로 특정범죄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임이 명백히 인식되고, 그 합의에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될' 정도에 이르렀는지는 미지수다. 당시 안보상황 등을 종합해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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