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고갱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로 북적댔다. 그림을 본 뒤 2층 복도 의자에서 쉬고 있던 박미영(43)씨는 "아들이 보고 싶어해서 전시장을 찾았다"고 답했다. 여덟 살 난 아들은 반 고흐 위인전을 읽다가 친구로 등장하는 고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고흐랑 싸운 사람이라고 해서 궁금해서요."
고갱을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 3점을 최초로 한자리에 모아 화제가 되고 있는 이번 전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갱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보는 좋은 기회다. 특히 고갱 최후의 작품이자 예술적 유서인 가로 폭 4m의 대작'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소장기관인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해외 반출을 엄격히 제한, 외국에 나온 적이 이번을 포함해 지난 50년 간 세 차례뿐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성훈(32), 김나희(29) 부부는 "이번에 이 그림을 못 보면 다시는 국내에서 볼 수 없을 거란 말을 듣고 일부러 왔다"고 말했다. 전시를 주최한 한국일보 문화사업단은 "이 같은(반출이 쉽지 않은) 구조라면 당분간 국내 관람은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고갱이 프랑스 브르타뉴 시절 그린 작품과 남태평양 타이티로 간 뒤 그린 작품을 구분해 총 60여 점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고갱 회고전으로는 국내 처음인 이번 전시는 고흐에 비해 저평가된 고갱을 재발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고갱과 고흐는 대등한 위치에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두 화가를 다룬 책을 10월에 낼 예정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고갱에게 있던 예술성이 고흐에게는 없었다. 고갱이 없었으면 고흐란 화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흐의 초기작에는 밀레의 영향을 받은 듯한 낭만주의적 요소가 많았습니다. 시대에 뒤쳐졌다고 할 수 있죠. 반대로 고갱은 새로운 화풍인 '종합주의'를 창시, 당시 주류였던 인상파에 대항했습니다. 두 사람이 자주 충돌한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한때 한 작업실을 쓰는 동료였던 두 사람이 성격 차이로 결별했다는 기존 설명과는 사뭇 다르다.
고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갱의 종합주의는 이번 전시에 나온 3대 대표작에서도 잘 드러난다. 1888년 작 '설교 후의 환상'에서 고갱은 바닥을 강렬한 붉은 색으로 칠해, 빛의 움직임을 따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인상파의 감각적인 화법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1889년에 그려진 '황색 그리스도'에서도 고갱은 그리스도의 나체를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 화가가 소재에서 받은 느낌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번 전시는 9월 29일까지 계속된다. 6월 14일 개막 이래 32만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월요일만 쉬고 매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9시에 닫는다. 매월 첫째, 셋째 화요일에는 밤 10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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