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과 협력해 미국·영국 정보기관의 운용 실태를 폭로해온 글렌 그린월드 가디언 기자 측이 영국 반테러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그린월드의 전령 역할을 한 동성애인 데이비드 미란다가 지난달 18일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컴퓨터 파일 형태의 영국 기밀자료 5,800건을 지니고 있다가 당국에 압수 당한 사건에 따른 것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그린월드도 스노든처럼 체포를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란다의 기밀 소지 행위의 반테러법 위반 여부를 조사할 권한을 런던경찰청에 부여했다. 2000년 제정된 이 법은 테러리스트에게 이로운 정보를 유도, 공개, 교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미란다가 갖고 있던 자료에 정보기관 요원들의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반테러법에 저촉된다는 입장이다.
올리버 로빈스 영국 내각 안보담당 부보좌관은 이날 미란다에게서 압수한 물품 중 암호화된 기밀서류 파일의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쪽지가 발견되는 등 안전 대책이 매우 허술했다며 "기밀자료들이 이미 (원래 소유자인) 스노든이 미국에서 도피해 거쳐간 나라(중국, 러시아)에 입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브라질 국적자인 미란다는 당시 그린월드로부터 받은 기밀자료를 갖고 스노든 관련 영화를 제작 중인 미국인 여성 감독 로라 포이트리스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뒤 런던을 경유해 브라질로 귀국하던 중이었다.
이날 공판은 원래 미란다 측이 불법적 압수인 만큼 경찰의 압수자료 조사를 중단해달라며 지난달 20일 영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데 따른 것이었다. 법원은 지난달 공판에서 경찰에 자료조사 일시 중지를 명령했고 이날 중지 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양측은 협상을 통해 압수자료 조사에 합의했다고 이날 법원에 알렸고 법원은 이에 따라 경찰에 조사권을 부여하고 심리를 10월로 연기했다. 캐롤린 구드 런던경찰청 경위는 "조사에 앞서 압수된 문건의 암호를 풀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복구하고 있으며 현재 75%가량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편 가디언은 뉴욕타임스(NYT)와 프로퍼블리카도 스노든이 빼낸 영국 정보기관 기밀을 입수했다는 사실을 영국 정부가 7월에 알고도 NYT 편집국장과 한차례 만난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안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가디언에 직접 찾아와 기밀자료가 든 하드디스크 파기를 지시하고 미란다에게 압수한 자료를 신속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태도와 사뭇 달라, 정부가 안보 위기를 실상보다 부풀려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반면 데일리메일 등 일부 언론은 정부가 NYT에 기밀자료 파기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와 NYT는 모두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한편 가디언이 정부와 거래를 통해 스노든 자료 중 안보에 해를 입히는 내용은 보도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보도도 나왔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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