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아름다운 공이네." 식당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탄성을 질렀다. TV에서는 야구를 중계하고 있었다. 동행이던 여자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아름다운데?" "그림 같은 곡선으로 날아가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걸리잖아. 짜릿해." 설명하는 남자의 들뜬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남자의 말을 메모해 두었다. '시가 너무 난해하다'는 말을 자주 듣던 터라 기회가 되면 '아름다운 공'을 화두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얼마 후 시 강의를 할 일이 있었고, 예의 '난해함'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시인과 독자의 관계는 투수와 타자 같은 게 아니겠냐고. 투수의 입장에서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공은 실투. 한참 벗어나는 공은 볼. 구석으로 꽉 차게 들어가는 공이라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가운데로 몰려 타자로 하여금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게 하는 공이 쉬운 시라면, 아슬아슬 구석으로 들어가 타자를 움찔하게 만드는 공이 어려운 시일지 모른다고.
적절한 비유라 생각하며 자기도취적으로 한참 떠들고 있었는데, 이어진 질문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요,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돌직구도 아름답지 않나요? 쉽지만 묵직해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들이요." 아, 그렇기도 하겠구나. 묵직하게 한가운데를 건드리는 것들. 아슬아슬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것들. 쉬운 아름다움과 어려운 아름다움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되는 날이었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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