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30일 공개된 지하혁명조직(RO)의 비밀회합 녹취록에 대해 "정세 인식이 다르다고 이를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혐의를 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녹취록 내용에 대해서도 "왜곡을 넘어 허구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인정할 수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해명에 모순된 측면이 있는데다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사무실인 국회 의원회관 520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5월 12일 RO 회합에서의 강연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저는 당시 한반도 전쟁위기가 현실화됐다고 판단했다"며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민족의 공멸을 막기 전에 하루 전이라도 빨리 평화를 실현하자고 말한 것이 어느 한편에 서서 전쟁을 치르겠다고 들린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며 비밀 회합 참여자들에게 전쟁 준비 계획을 촉구하는 듯한 녹취록의 강연 내용과는 180도 다른 해석이다.
그는 이어 "양측(북ㆍ미)의 군사행동이 본격화하면 앉아서 구경만 할 것인가 물어본 것"이라며 "60년간의 정전 체제를 끝내고 좀 더 주도적으로 항구적 평화체제로 바꿔내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저는 전쟁에 반대한다.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이 자리에서 6ㆍ25전쟁 당시 좌익전향자 학살사건인 보도연맹 사건을 들며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지 모르는 사람이 진보당 열성 당원"이라며 "전쟁이 예고돼 있다면 그에 걸맞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쟁 발발 시 진보당원들이 대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로 자신이 "평화주의자"라는 주장과 모순된다. 녹취록에서는 "수세적 방어가 아니라 공세적 공격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발 더 나갔었다.
그는 또 자신의 강연 이후 진행된 분반 토론에서 '총기 마련' '기간시설 파괴' 등의 과격한 의견이 제시된 것에 대해선 "저는 모른다. 저는 강연만 했다" "강연만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떠났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녹취록에는 그가 "물질적으로 강력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당장 준비하기를 바라며 강의를 마치겠다"는 내용의 정리 발언까지 한 것으로 돼 있다.
불분명한 의혹 해명과 달리 자신의 거취에 대해선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사법절차가 진행되면 진실을 증명하고자 당당히 임하겠다"며 "내란음모니 하는 국정원의 날조와 모략에 대해 한 치의 타협 없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자진출두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고 "의원직을 사퇴할 생각은 없다"고도 했다.
이에 앞서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과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회합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당원 모임으로 통상적인 당 활동"이라면서도 종교시설을 대관하게 된 경위에 대해 "농민 당원에게 장소를 섭외해 달라고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ㆍ농촌 간 직거래 행사를 한다"는 이유를 제시한 것으로 확인돼 의혹을 더했다. 이 의원은 녹취록에서 강연 첫머리와 끝머리에 비밀 회합을 암시하듯 "바람처럼 오셨습니까" "바람처럼 사라지시라"라고 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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