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해전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해전쟁

입력
2013.08.30 12:02
0 0

김종대 지음

메디치 발행ㆍ348쪽ㆍ1만5,000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인화성이 강한 주제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가 1급 비밀이 대수냐는 식으로 야당까지 합세해 국회 대화록을 파헤치는 판국이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NLL 문제가 이만한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게 그리 오래지 않다. 보이지도 않는 이 선이 피로 지켜와 한 뼘도 양보할 수 없는 안보의 심벌이 된 건 1999년 제1연평해전을 즈음해서다. 이전에도 북한의 NLL 침범이 없었던 게 아니다. 지금처럼 NLL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당한 수준의 교전 없이 경고와 위협으로 상황이 수습이 됐다. NLL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임의로 정해진 경계선이라는 인식에 가까웠다. 다수의 국민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간 에서처럼 어떤 이유로 제1연평해전부터 연평도 포격전까지 10여년에 걸쳐 서북 해역에서 다섯 차례의 남북 교전이 발생했는지 살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국회 국방위 소속의 의원 보좌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으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안보 전문지를 편집 발행하고 있는 저자는 이 사건들과 관련된 군 고위 관계자 30여명을 인터뷰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저자는 적어도 제2연평해전까지 남북교전의 초기 상황만 해도 저자는 서북 해역에서는 ‘꽃게는 전쟁을, 해파리는 평화를 부른다’는 경제적 법칙이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었다고 본다. 특별히 남과 북이 충돌할 만한 군사적 이유가 원래부터 있었다기 보다 특정 시점에 어업 변화가 서해의 경제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했고, 여기에 국가 이익이 있다고 판단한 남과 북이 같은 장소로 몰려들어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서해의 어획량이 동해를 앞섰고 특히 서북 해역에서 잡아들이는 꽃게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어선을 보호 감시하기 위한 남북 군의 경계가 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치할 기회도 증가한 것이다.

물론 그 같은 요인만으로 교전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초점을 맞추는 우리측의 원인으로는 NLL 수역을 감시하는 해군과 작전을 지시하는 합동참모본부, 그리고 최종 결정권을 가진 청와대 각각의 기강문란, 무능, 책임회피 등이 중첩되어 있다.

저자는 항상 적의 함정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바다의 전투원들을 ‘선방어’라는 개념에 집착해 자꾸 근접시키고, 선에 죽 늘어서 “모양새 좋게 작전을 하라”고 지시한 합참 작전본부와 사령부를 제1, 제2연평해전에서 교전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 꼽는다. 바다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방위하라는 지상군 개념의 작전 지시는 육군이 장악한 합참이 반복해 저지른 실수로, 이제껏 평화로웠던 서해가 죽음의 바다, 분쟁의 바다로 가게 된 1차적 요인이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은 합동작전의 무경험자가 대거 포진해 위기 속에 조직의 정상적인 기능이 붕괴되는 대표 사례라고 봤다.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는 공군 지원이 가능한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이 현장 상황에 대한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소통을 계속했다. 작전을 기획할 줄 모르는 국군은 미국에 대한 의존을 체질화하면서 거대한 무능과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런 군대는 반드시 전쟁에 진다’고 단언했다.

저자는 또 조직의 업무 수행은 국가적 의지나 전략과 무관하게 움직인다고 말한다. 이런 사건들은 대개 자신의 표준행동절차 아니면 일상대로 움직이다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제2연평해전 당시 우리 고속정이 북한 함정에 접근했던 것도, 천안함이 최전방 수역에서 왜 최저속도로 기동하며 경계태세를 허물어뜨린 것도, 답은 모두 평소에 그렇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제2연평해전까지만 해도 여러 날 동안 해상 무력시위와 교란작전 후에 벌어진 수상함끼리의 충돌이었지만 북한은 그러한 무모한 도발을 하지 않고 자신이 유리한 지상 전력을 동원한다는 군사적 합리성을 비로소 발견했고 그러한 능력을 갖췄다고 말한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가져다 준 자신감이다. 이제는 ‘꽃게’라는 경제적 법칙이란 건 없고 오직 전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정치적 결정과 군사적 행동이 있을 뿐이다. 남도 북도 지금까지의 교전을 뛰어 넘는, 적어도 군사분계선의 다른 곳 어디서 일어나기 힘든 전쟁을 서해에서 치를 준비가 끝난 단계에 들어섰다고 그는 진단한다. 서해의 남북 대치가 대청해전까지의 다분히 우발적인 교전 단계를 넘어서 명백히 전쟁 직전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책은 발표나 보도로는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 적지 않아 ‘시크릿파일’이라는 책의 부제가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한때 유행했던 같은 기자들의 정치 비사 연재물 못지 않게 재미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남북 서해교전에 얽힌 뒷이야기를 엿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현실을 인식해야 전쟁을 막거나 통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저자는 자신의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서해에서 평화와 안정,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리더십, 국가의 외교 군사 정보력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기 위해 유능한 관료와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그런 리더십과 시스템이야말로 NLL 상황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하는 것도, 또 그것이 국내 정치에 이용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책의 메시지를 되씹어보게 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