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심의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인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는 우려됐던 대로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 체제 정당화, 이승만 국부론, 식민지 근대화론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30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한 이 교과서에는 5·16 군사 쿠데타 직전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이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군비 축소를 약속하고 경찰 치안 능력이 약화해 혼란상을 자초한 것으로 서술돼 있다. 교과서는 당시 정부가 "4·19에 참여했던 다양한 세력으로부터 압력을 받았고, 북한 김일성 정권에 의한 은밀한 적화 기도가 계속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했다"라고 적시해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 하의 경제 개발상을 강조하는 반면, 1976년 육영수 여사 시해와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을 예로 들어 "북한이 유신 체제 교란 위해 일삼은 극단적 행동이 유신 체제가 지속될 명분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찬양하는 구절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 당시 직접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던 일을 소개하며 그가 "당시 가장 존경 받고 신뢰 받는 지도자였으며 광복 후에는 국민적 영웅이 됐다"고 설명한다.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 후 여론의 압력을 받아 하야할 당시 발표한 담화문 중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공산당이 호시탐탐 기다리는 것을 알고 기회 주지 않도록 힘쓰길 바란다"는 내용을 발췌해 싣고 '이 전 대통령이 하야를 결정하며 무엇이 가장 큰 관심사였는지 생각해보자'는 탐구 과제를 제시하는 부분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도시들이 식민지적 요구에 의해 교통·유통 중심지로 성장했다"거나 공업화가 급진전하고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등장했다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을 언급한 부분도 진보 진영에서 우려했던 것이다.
북한 체제에 대한 거센 비판은 교과서에 적절한 수준인지 논란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교과서는 북한의 억압적 분위기, 굶주림 등을 지적하며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국가",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6·25 이후 남한에 대한 무력 도발을 멈춘 적 없다"는 비판을 이어간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전체적으로 반공 교과서 같은 느낌"이라며 "학생들에게 평화 통일을 가르쳐야 할 교과서의 내용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과서가 검정 심의를 통과하면서 학계와 시민사회 등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날 국편에서 공개한 검정 단계 수정 전후 내용을 검토한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총 367쪽 교과서에 수정 권고 사항이 479개라는 건 모든 쪽에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이런 상태에서 합격시킨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교과서가 교육을 목적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한 의원 모임' 공동대표인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성명을 내고 "5·16 군사 쿠데타를 미화한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합격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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