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꼴깍꼴깍 지새우던 외신기자를 너무 오래 한 탓이리라. 지금도 타임과 뉴스위크를 손에서 떼지 못한다. 야근 시 돌발사태가 터져 분초를 다툴 경우 두 주간지를 미리 읽지 않고는 뼈있는 해설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와 결별한지 올해로 10년 되는 지금까지도 후유증으로 남아 정기구독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득도 없지 않다. 지금의 이집트사태를 파악하려면 국내일간지만으로는 턱도 없다. 민선대통령이 된 후 축출된 무르시가 옳은가 아니면 군부의 철권실력자 알-사시가 옳은가. 이를 제대로 알려면 이번 주 뉴스위크인터넷 판이 커버스토리로 다룬 '익명의 독재자'를 읽지 않고는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 일간지가 돌발사건과 속보에 능하다면 타임이나 뉴스위크는 흐름에 강하다. 경제용어를 빌자면 일간지는 스톡(stock)에, 시사주간지는 플로우(flow)에 강하다. 플로우를 놓치면 뉴스의 진가는 반감한다. 타임이나 뉴스위크를 내가 권장하는 이유다.
내 경우 같은 값이면 타임보다 뉴스위크를 선호했다. 뉴스위크에 얽힌, 더 정확히는 그 주간지와 모회사 워싱턴포스트에 얽힌 사연 때문이다. 뉴스위크가 워싱턴포스트의 방계주간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워싱턴포스트의 사장 필 그레엄이 뉴스위크의 주파리여자특파원과 사랑에 빠진 끝에 권총자살, 워싱턴포스트가 한 때 존폐의 위기에 빠졌던 걸 아는 분은 드물다. 그 위기를 구한 인물이 바로 워싱턴포스트의 창업주 유진 마이어의 딸 케더린 마이어다. 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인 필 그레엄의 아내로, 남편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 경영권 모두를 남편에게 일임한 현숙한 여인이었지만, 남편의 배신과 사별이 이 여인을 기자 겸 경영주로 변신시켜 한때 존폐의 위기에 몰린 워싱턴포스트를 재기시킨 대목은 언제 읽어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워터게이트사건이 터지자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와 두 명의 특종기자 칼 번스타인, 밥 우드워드와 매일 밤 회동, 세기적 특종을 진두지휘한 여걸이다. 그녀가 여타 신문의 사주와 다른 특장은 한마디로 사람 욕심, 그 중에도 특히 기자욕심이 압권이다. 상대지 뉴욕타임스의 대 논객 제임스 레스턴을 주필로 영입하려 삼고초려를 불사 했고, 레스턴이 고사했음에도 그에 대한 신임과 우정을 끝까지 지켜 "유고시 나의 아들딸들을 레스턴에게 맡긴다"는 유서를 남길 정도로 각별하고 돈독했다. 신문의 경영은 이재와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에게 일임, 장장 27년간 연속흑자를 냈고, 그 워렌을 "내게 위대한 스승이자 내게 새로운 장을 열어 준 인물"이라고 자서전에 극찬했다.
그는 기자수업 또한 제대로 치렀다. 명문 시카고대 졸업 후 워싱턴포스트를 도우라는 사주 아버지의 권고를 뿌리치고 샌프란시스코의 3류 신문기자로 변신, 공황을 전후해서 극에 달했던 노사대립을 취재하러 시체가 뒹구는 파업 현장에 뛰어든다. 노조 지도자와 우정을 쌓으며 한잔에 25센트 나가던 보일러 메이커(지금의 폭탄주라 여기면 된다)를 나눠 마시며 깊은 사랑에도 빠진다. 유대인 아버지의 위세와 워싱턴포스트라는 배경을 탈출하려던 한 여기자의 고뇌와 방황, 을(乙)에 대한 사랑이 감동이상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캐더린의 사후 신문의 경영은 기자수업이 전무한 아들 도널드에게 넘어가고, 예상했던 대로 적자난의 연속을 거듭하더니 뉴스위크의 폐간으로, 급기야는 워싱턴포스트마저 8월 초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에게 2억5,000만 달러의 헐값에 팔리고 만다.
워싱턴포스트가 지금의 한국일보에 주는 교훈, 다시 말해 워싱턴포스트를 반면교사로 여기면 승산이 있다는 당부를 남기고 싶다. 사연과 혼이 깃든 신문으로, 또 스톡보다 플로우에 치중하는 신문으로 승부를 걸라. 거기에 기자를 귀히 알고 기자수업을 쌓은 경영인을 모시면 금상첨화다. 1년 남짓 친정 한국일보를 위해 봉사한 한 전직기자의 기고를 오늘 이 글로 마감한다.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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