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쪽 날개와 뒤쪽 표지에 적힌 글들-저널리스트로서 저자의 프로필과 '최고의 논픽션'이라는 상찬들-이 아니면 캐릭터와 플롯의 차진 접착력에 감탄할 만한 책이다. 즉 소설로 훌륭했을 작품이다. 그런데 그렇게 감탄할 수 없는 까닭은, 책 속의 인생들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20년 경력의 기자가 인도 뭄바이 빈민가의 현실을 4년 간 밀착 취재해 남긴 르포르타주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장미꽃밭 사이의 똥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빈곤과 불평등의 거리가 바로 르포의 현장이다. 가난과 소외와 슬픔이 책 속에 출렁인다. 세계화의 부산물인 구조적 빈곤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적나라하게 읽혀진다. 묵직한 고발서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읽어내기가 무겁지 않다. 문장이 깔끔히 정제돼 있고 템포가 정확히 계산된 덕분이다. 그래서 책 속 아이들의 고통이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면, 그건 지은이의 문재(文才)로 평가해야 옳다.
인구 2,000만명의 거대 도시 뭄바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빈민촌이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부조리가 이곳에서 진행 중이다. 빈부격차와 한탕주의와 부정부패 같은, 고속 성장한 경제가 배설한 부산물이 있다. 무슬림과 힌두교 사이의 갈등, 인습에 고통받는 여성같은 인도의 고민도 있다. 혀로 플라스틱 쓰레기의 값을 판별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어린이의 하루가, 5성급 호텔에서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미세하고 정교한 관찰이 돋보인다. 세계화 이후에 대한 어떤 통찰이 이 책에 담겨 있다면, 그건 복잡한 담론의 결과가 아니라 가까이서 오랫동안 응시한 자의 눈빛이 응결된 것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누리는 풍요에 대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대가의 풍경.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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