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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낙원상가·강남 버스터미널… 기억 속의 서울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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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낙원상가·강남 버스터미널… 기억 속의 서울을 더듬다

입력
2013.08.3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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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광화문 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충정로역 부근에 선명한 녹색 건물이 눈에 띈다. 무채색의 도시 속에서 천박하리만치 반질거리는 5층짜리 건물을 나는 늘 궁금해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버스에서 내려 자세히 관찰한다든지,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알고 보니 그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 아파트였다. 1930년대 일본 건축가가 지은 이래 고급 주거 시설로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 아파트는 이후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그곳 지하실에서 양민을 학살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의 근원지가 된다. 전쟁 후에는 유엔 전용 호텔로 변신, 주말마다 옥상에서 파티를 여는 화려한 나날이 이어지지만 1979년 충정로 8차선 확장을 계기로 건물 앞면이 헐려 나가는 아픔을 겪는다.

여상하게 보아 넘기던 그 아파트가 늙은 창부와 같이 처절한 사연을 가졌을 줄 어떻게 알았으랴. 아마도 이런 식으로 스쳐버린 서울의 장소들이 한 두 곳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 시민들은 생활의 터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울을 다 안다고 믿고 산다.

은 서울의 골목, 건물, 광장에 대한 성의있는 스케치다. 건축가인 저자는 요즘 뜨는 장소보다는 한때 영광을 누렸던, 그러나 지금은 모두의 기억에서 밀려난 곳들을 주로 조명한다. 인사동과 어린이대공원, 낙원상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그런 곳이다.

고속버스터미널은 80년대 완공 당시 5층 승차장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 혁신적 교통 시스템이었으나 승차장이 폐쇄되고 옆에 들어선 센트럴시티에게 주인공 자리를 빼앗겼다. 저자는 3층 꽃 도매상가와 5층 웨딩홀을 지나 폐허나 다름없는 6~8층까지 세심하게 훑는다. 호객에 실패해 텅 빈 건물에서 그는 승차장이 폐쇄되기 전인 30년 전의 모습을 떠올린다. 노인의 손을 잡고 위로하듯 영욕의 시간을 보낸 건물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세월을 견딘 것들'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애정은 이 책을 여느 서울 탐방기들과 차별화시킨다. 건축학적 지식과 직접 그려 삽입한 건물 스케치도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데 한 몫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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