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출산 앞둔 이민진 삼성화재배 끝내 포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출산 앞둔 이민진 삼성화재배 끝내 포기

입력
2013.08.30 12:00
0 0

"너무 너무 아쉽죠. 제 맘 같아서는 무조건 상하이로 달려가고 싶은데 주위에서 너무 걱정들을 많이 하세요. 항공사에서도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는 비행기를 태워주지 않는다네요."

올해 삼성화재배 통합예선 여자조에 만삭의 몸으로 출전해 한국과 중국, 일본 선수 다섯 명을 잇달아 제치고 본선 출전권을 따내 화제가 됐던 '정관장 스타' 이민진(29)이 결국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 중국까지 장거리 비행기 여행이 무리라는 주위의 만류 때문이다.

출산예정일이 이달 말이어서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부터 과연 9월 3일부터 상하이에서 열리는 본선 경기에 나갈 수 있을 지 걱정됐지만 그래도 아기가 조금 일찍 나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꼭 출전하려 했는데 대회 개막이 임박했는데도 아기가 통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아 결국 출전을 포기한 것.

"그동안 정관장배를 비롯해 여자대회는 많이 나가 봤지만 일반 세계대회 본선은 처음인데다 아기가 생기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아서 꼭 출전하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민진이 이번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에서 만삭의 몸으로 5연승을 거두고 본선 티켓을 따낸 것만도 실로 대단한 일이다. 이번 대회서 이민진은 셰이민, 김혜민, 리샤오시, 김채영, 왕천싱 등 한중일 3국의 강자 다섯 명을 물리쳤다. 특히 셰이민과 왕천싱은 일본과 중국의 최정상급 기사다.

"평생 승부를 포기하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아기 때문에 도저히 바둑에 집중할 형편이 못 됐는데 운이 좋았는지 어떻게 예선을 통과했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리 닷새 동안 무거운 몸으로 어떻게 대국을 계속했는지 마치 꿈만 같다. 사실 대국장에 앉아 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바둑을 뒀는지 모르겠다. 다섯 판 모두 대여섯 시간씩 걸렸고 바둑 내용도 쉬운 판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체질인데 아기 가진 후로 땀이 무척 많아져 바둑에 집중하면 금방 겉옷까지 흥건하게 젖었다. 그래도 몸 핑계 대지 않고 악착같이 버텼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특히 결승전에서 그동안 한국 기사들을 많이 울린 왕천싱을 이기고 본선 티켓을 따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원래 본선 진출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어요. 한데 막상 본선 티켓을 따고 보니 또 욕심이 났지요. 제가 원래 승부근성이 엄청 강하거든요. 튼튼이(태명)가 조금만 빨리 나오면 2~3일만 쉬고 바로 상하이로 날아가려고 비자까지 다 준비해놨는데 이 녀석이 엄마 마음을 통 헤아려주지 않네요. 물론 주변 사람들, 특히 어른들께서는 모두 걱정 많이 하시죠. 남편은 내가 워낙 나가고 싶어 하니까 딱 부러지게 안 된다고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다행이다 싶을 거예요."

이번 대회 출전 포기로 금전적인 손해도 적지 않다. 대회 규정상 본선 1회전 불참자에게는 대국료를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 1회전에서 연속 2패를 당해 바로 탈락한다고 쳐도 최소 500만 원 정도를 손해 보는 셈이다. 한편 이민진의 본선 불참으로 대회 주최측에도 비상이 걸렸다. 삼성화재배 본선 1회전(32강전)은 4명씩 한 조가 돼서 그 중 2승을 거둔 2명이 2회전에 진출하는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민진이 빠지면 한 조는 3명밖에 안 돼 짝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회 관계자들이 긴급대책회의를 한 결과 일단 이민진을 포함해 조 추첨을 한 후 대국 당일(9월 3일) 대국장에 나오지 못할 경우 기권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1999년 입단한 이민진은 2007년 제5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에 한국팀 주장으로 출전해 막판 5연승을 거두며 극적인 대역전 우승을 이끌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 여자바둑 최초의 단체전 세계 제패였다. 이듬해에도 또 정관장배에서 3연승을 거뒀고, 지난해 지지옥션배에서는 5연승을 기록하는 등 특히 연승전에 강해 '정관장배 여신' '연승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년 전부터 김혜민, 박소현, 김윤영, 박지연, 문도원, 이영주, 김나현, 김혜림과 함께 바둑공부모임인 무여회를 조직해 '바둑계의 무서운 여자가 되자'는 각오로 매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국기원 4층 여자기사실에 출근해 열심히 바둑공부를 하고 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