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커 아르츠트 지음ㆍ이광일 옮김
들녘 발행ㆍ352쪽ㆍ1만8,000원
흔히 식물을 수동적이라 인식한다. 동물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도 당연시한다. 땅에 뿌리를 박고 고정된 생을 영위하는 존재 행태가 주는 선입견일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보편적인 편견에 반기를 든다. 식물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진화된 생명체인지 갖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잘못된 인식을 꼬집는다. 책이 소개하는 식물들의 모습은 똑똑할 뿐만 아니라 영악하기까지 하다.
난초의 일종인 넓은잎습지난초는 꿀을 분비하지 않으면서도 꿀을 만들어내는 꽃들의 표식인 얼룩무늬를 지니고 있다. 이 얼룩무늬는 꿀을 분비하는 것처럼 곤충을 유인해 꽃가루를 다른 난초에 옮기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곤충의 도움으로 번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고육책이다. 거울난초는 더 교활하다. 거울난초의 꽃은 암컷 말벌을 닮았으면서도 암컷 말벌보다 덩치가 커 수컷 말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수컷 말벌들이 꽃에 달려들어 몸을 비비면 다른 수컷이 날아와 꽃을 두고 다툼을 벌이게 된다. 이 와중에 수컷 말벌들은 꽃가루를 온 몸에 묻히게 되고, 몸이 단 수컷 말벌은 암컷 말벌을 닮은 다른 거울난초에게 날아가 꽃가루를 전달하게 된다. 수컷 말벌들의 애타는 몸부림은 결국 거울난초의 번식을 위한 헛된 몸짓에 그친다.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로 유명한 네펜테스 비칼카라타는 단지 곤충을 먹이로만 생각하진 않는다. 딱정벌레의 위협을 막기 위해 꿀물을 미끼로 개미들을 끌어들여 딱정벌레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한다. 이 정도면 지능이 꽤 높은 생명체다.
이 책은 식물들의 알려지지 않는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식물들이 어떻게 소리없이 공존의 원칙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저서다. 독일 과학전문기자 출신인 저자는 과학 저술가와 자연과학 다큐멘터리의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넓은잎습지난초는 꿀을 분비하는 것처럼 속여 곤충을 유인해 꽃가루를 나르게 한다. 한스 힐레바에르트 사진 제공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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