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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8월 31일] 언어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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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8월 31일] 언어와 생활

입력
2013.08.3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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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식탁 위에 P사에서 만든 어떤 라면 한 봉지가 놓여 있어서 유심히 포장지를 보니, 거기에 "기름으로 튀기지 않아 몸에도 맛있습니다"라는 카피가 적혀 있었다. 이 문장의 의미는 입으로 느끼는 맛은 기본이고 몸(건강)에도 좋다는 것일 텐데, 좀 가소롭게 느껴졌다. 나는 문장이 이렇게 수정된다면 그 라면을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으로 튀기지 않아 몸에는 맛있습니다." 이래야 좀더 솔직한 표현 아닌가.

내가 유난을 떠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조사에 불과한 '도'와 '는'의 차이는 나처럼 쓸데없이 민감한 이의 윤리적 무의식을 자극하거나 억압할 수도 있다. 한국어는 조사 하나에 따라 의미 한정이 매우 달라진다. 김훈 선생도 물경 백만 부 판매를 기록한 첫 문장을 쓸 때, 조사 때문에 몇 날 며칠 고민했다고 하지 않은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이'와 '은'이 낳는 이 광대무변한 차이. 그걸 이해하고 고민하는 것이 하루 종일 쇳물을 붓고, 하루 종일 시멘트를 나르고, 하루 종일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루 종일 옷을 만드는 일보다 숭고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해야 하는 쪽에 서서 먹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썩 자랑스럽지는 않다. 어쨌거나 잘 모르겠다. 언어와 생활의 신비.

김도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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