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백호주의는 백인 이외 인종의 이민을 배척해 백인사회 동질성을 유지하려던 정책이다. 1901년 연방을 결성한 후부터 유지돼왔던 백호주의는 호주 정부가 2차 대전 후 자국민만으로는 노동력이 부족한 범위에서 유색인종 이주를 인정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영국 일간 가디언은 경제불황을 틈 타 호주에서 백호주의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28일 전했다. 호주의 신 백호주의 조짐은 다음달 7일 예정된 총선을 놓고 각 정당들이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 내놓는 난민정책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지난달 기준 호주에는 3만2,000여명의 난민이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수용소 등에 머물고 있다. 규정대로라면 이들은 난민 자격 심사를 통과하면 3년짜리 임시비자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호주 내부에서 난민에게 들어가는 복지예산 때문에 중산층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자 정치권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집권 노동당 케빈 러드 총리는 4일 향후 호주로 오는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파푸아뉴기니 등 인근 섬나라에 설치된 난민수용소로 보내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총선에서 승리가 유력해 차기 총리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자유당ㆍ국민당 야당연합의 토니 애벗 대표는 16일 새 난민은 물론 이미 입국한 난민에게도 영주권을 주지 않겠다며 노동당보다 더 강경한 난민 정책을 내놓았다. 가디언은 "호주 정치권이 내놓은 난민 정책들은 난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한 제네바 난민협약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 정치권은 강경한 난민 정책을 내놓기에 앞서 비자 발급요건과 영주권 취득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 이민자 정책도 강화했다. 호주는 최근 고용주들이 457비자(고용주 후원 임시취업) 소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려면 이에 앞서 내국인 우선 채용을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법을 바꿨다. 이 개정법은 호주 내부에서도 인종차별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호주는 또 요리와 미용 등을 영주권 취득이 쉬운 직업군에서 제외시켜 이민자의 진입로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호주의 이민과 난민 정책 강화에는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 국가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기본적으로 백인 기독교 국가인 호주 사회가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경계심이 숨어 있다. 실제 호주 전체 인구 25% 이상은 이주민이며, 이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중국인들의 호주 광산 투자 붐이 올해 꺼지기 시작하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도 호주의 보다 강경해진 이민 및 난민 정책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디언은 "1800년대 중반 호주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났을 때 중국인 등 황인종이 급격히 늘면서 이를 제재하기 시작한 것이 백호주의의 시작이었다"며 "이번에는 중국 경제 호황에 힘입은 광산 붐이 꺼지면서 호주가 새로운 백호주의를 펼치려 한다"고 전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