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극장가에 한국 영화들이 약진하고 있다.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 '감기' 4편이 바통을 주고 받듯 흥행에 성공하면서 '쌍끌이'를 넘어 '더블 쌍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 영화가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모은 해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쏟아진다.
극장이 지금처럼 호황에 즐거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역대 흥행작들에 대한 기록들도 함께 거론된다. 한국 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은 '공식적'으론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이다. 1,301만명이 봤으니 최고라는 수식이 걸맞다. 2위는 '도둑들'(1,298만3,330명), 3위는 '7번 방의 선물'(1,280만 7,256)이 차지하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대형 흥행작임에도 이들 영화 앞에 역대라는 표현을 쓰기엔 조심스러워진다. 영화 흥행 성적의 전국 단위 집계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이 제대로 가동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까진 공인된 기록이라 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괴물'은 역대 최고 흥행작이 아니라 2000년대 최고 흥행작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최신 영화들은 전국 단위로 개봉된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일수록 방방곡곡 많은 극장에서 관객과 동시에 만난다. 매일 매일의 흥행 결과는 밤 12시쯤이면 영진위 홈페이지에서 알 수 있다. 개봉 영화 관계자들은 매일 밤 환희에 잠 못 들거나 쓰린 속 때문에 선잠을 자기 일쑤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 배급 구조는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전국 5개 권역으로 나뉘어 각 권역의 배급망을 지닌 지방 배급업자들이 따로따로 있었다. 이들은 한국 영화의 경우 제작비를 미리 대고 각 권역의 배급권을 얻었다. 외화는 수입 대금에 투자하는 식으로 배급 권리를 가져갔다. 이들은 각각 자신들의 권역에 있는 극장들에 영화를 배급하고 이익을 챙겼다. 서울의 영화사들은 굳이 구체적인 흥행 결과를 알 필요가 없었다. 지역 배급업자와 극장들은 정확한 흥행 기록을 남겨 세금 폭탄을 맞을 이유가 없던 시절이다. 전국 단위 관객 집계가 이뤄질 수 없던 구조였던 것이다. 이때는 서울 관객 수만으로 흥행 왕좌를 가릴 수 밖에 없었다.
각 권역을 호령하던 배급업자들은 1990년대 들어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1987년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직접 배급하면서 지방 권역은 급속히 무너졌다. 충무로에 진출한 삼성과 대우 등 대기업들도 할리우드 직배사 방식을 따르면서 영화 배급의 지역별 칸막이는 사라지게 됐다. 1999년 개봉한 '쉬리'는 전국 동시 배급의 상징적 영화다. 582만 관객이 찾은 이 영화를 필두로 대대적 전국 동시 개봉이 일상화됐다. 때맞춰 일어난 멀티플렉스 붐은 영화 배급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진 전국 관객 집계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방 극장들이 영진위의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가입을 거부했기에 투자배급사들은 극장마다 입회인을 보내 관객 수를 일일이 세는 번거로운 절차를 겪어야만 했다.
2000년대 들어 전국 영화 관객 집계가 정착됐으나 예전 영화들의 관객 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쉬리' 이전까지 한국 영화의 흥행 제왕으로 여겨지던 '서편제'(1993)는 서울 단성사에서만 103만 5,741명이 봤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1,000만 관객이 봤을 것으로 많은 영화인들은 추정한다. 하지만 전국 집계 기록이 없던 시절이라 '서편제'의 흥행 성적은 100만명 선에 머물러 있다. 2000년대 개봉한 영화들의 영진위 흥행 집계도 여전히 제멋대로인 경우가 왕왕 있다. 800만 이상이 봤다고 알려진 '친구'(2001)의 경우 서울 관객 267만 8,846명만 영진위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친구'는 영진위가 선정한 역대 박스 오피스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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