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당시 선거개입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국가정보원의 국면 전환 카드인가. 확실한 증거에 바탕을 둔 적절한 법리적 판단인가. 국정원과 검찰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한 것을 두고, 법조계를 중심으로 여러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은 "유죄 입증에 자신 있다. 지켜봐 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만큼 향후 재판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30일 국정원 등에 따르면 이 의원 등 지하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ㆍRO) 관련자들에게 적용된 혐의 사실은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에 130여명이 모여 '총기를 준비하라'는 내용의 대화를 하는 등 국가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으로서는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명백한 증거로 확보했기 때문에 폭동(내란)을 음모한 내란음모죄를 입증하는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실제 한국일보가 입수한 녹취록에서도 폭동을 계획했다는 정황들이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 무기 확보나 기간시설 타격, 기간시설 종사자 포섭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이 드러나는가 하면 총을 준비해야 한다는 일부 참석자들의 말이 고스란히 기록이 돼 있다. 나아가 국정원은 녹취록 외에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수사기관의 자신감과 재판에서의 유죄 입증은 별개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의원 등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 법원의 판결 추세가 수사기관이 100%에 가까운 유죄 입증을 하지 않는 이상 무죄로 본다는 쪽으로 가고 있어 국정원 등에게는 불리하다는 관측이다. 검찰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이후 실제 범죄에 적용한 사례가 없어 경험이 적다는 점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민경한 변호사는 "그들끼리 얘기를 나누고 아직 구체적으로 실행에 들어가지 않은 단계였기 때문에 이들의 계획이 실제로 국가를 전복하겠다는 목적이었는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여러 의견 중에 하나일 뿐, 조직원들이 공유해 행동에 옮길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녹취록 가운데도 '총을 준비해야 한다'는 등의 일부 발언에 '뜬구름 잡는다'며 회의적인 답을 하는 참석자들도 여럿 있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형태 변호사는 역시 "폭동을 일으키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바로 처벌하려면 구체적인 구성요건이 필요하다. 어떤 경로로, 어떤 수단을 통해 행동에 옮길 것인지가 없는 상황에서 나라를 뒤엎겠다든지 국회의원 다 죽이겠다고 해서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과 검찰의 숨은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대선 개입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국내정보파트 축소 및 폐지 등 개혁 요구가 거센 현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조직의 간부급 이상에게 최하 5년에서 최고 사형까지 선고가 가능한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결성죄를 두고, 최하 3년 이상 징역형으로 법정형이 더 낮은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한 것은 내란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충격을 이용해 비판 여론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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