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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8월 30일] 살아있는 눈빛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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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8월 30일] 살아있는 눈빛을 보고 싶다

입력
2013.08.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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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사람은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주시하고 집중한다. 그런 사람이 내주는 커피는 이미 마시기도 전에 맛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다. 음식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잘 하겠다는 그 마음이 눈빛으로 옮겨가면서 마침내 잘 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의 미래 또한 결국 잘 될 수밖에 없다. 그게 이치다.

오래전 페루의 마추픽추에서 만난 사람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반나절 동안 마추픽추의 수수께끼를 설명해 주는 임무를 띤 사내였는데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가졌다 했더니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그토록 바람이 심한 절벽 끝으로 가서 양팔을 벌리고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바람에 몸의 중심이 흔들려도 그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눈에 바람이 가득 차 있기에 나는 줄곧 그의 눈빛을 흘끔거렸다.

그의 눈빛이 푸른 하늘빛이었다면, 나를 만나러 어느 도서관 행사에 와서는 '당신이라는 사람 때문에 평생 글을 쓰기로 맘을 먹었어요' 라고 말하는 젊은 독자의 눈빛은 참 많이도 붉었다. 그 눈빛 때문에 그만 내 눈가가 벌게지는 바람에 할 말을 잇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 붉은 눈빛은 나에게 전염되고 있었다.

요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또 하나의 눈빛은 제주도 노루의 눈빛이다. 최근 개체수가 늘어나 농가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포획 대상이 된 노루는 그만큼 한라산 일대의 여느 숲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었다. 인간에게 멀거니 눈길을 주는 노루의 눈빛은 한없이 무구해서 엽총이 이 눈빛과 마주친다면 엽총의 부리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무구한 눈빛은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살고 싶어서 일순 발바닥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검은 눈빛도 있다. 생기를 거부한 듯한, 그 검은 것으로도 모자라 좀처럼 상대의 눈과 마주치지 않는 눈빛. 자신감도 정당함도 그 어떤 선명함조차도 담지 않은 죽은 눈빛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아서 얼른 자리를 마치고 싶은 눈빛.

세상은 좋은 눈빛들마저 거두어갔다. 피로감이, 속도가, 물질이 생생한 눈빛들을 말살해버렸다. 불가능을, 불온함을 눈빛으로 맞서봐야 헛일이라고 눈조차 뜨지 말 것을 세상은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이 도태 대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눈빛에 치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람됨을 발라내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그 눈빛에 푹 젖기 위해서다. 눈빛만으로 에너지를 전해 받는 일이나 눈빛만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받는 일. 우리 삶은 그 눈빛 앞에서 한걸음 진보한다. 손 닿을 수 없는 거리까지도, 손을 쓸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일의 회오리를 뚫고도 눈빛은 가닿는다. 별은 어둠속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라는 말처럼 이토록 세상이 칙칙하니 그 밝음에 붙들리고자 함이다.

눈빛과 얼굴이 서로 상관없는 다른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정신은 오장육부에서 생겨나고 눈빛은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진리를 두고 누가 억지라고 할 텐가.

좋은 눈빛에 흔들려야 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쉬지 않는 눈빛과 마주쳐야 한다. 그것이 다행한 일이다. 좋은 눈빛으로 깨닫고, 힘나고, 구원받아서 비틀거리지 않아도 된다면 그 눈빛에게 오래 같이 가자 할 것이다.

자신에게 도달하는 순간, 눈빛은 살게 되어 있다. 자신의 인생에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눈빛을 살게 한다. 생의 애착을 담은 눈빛은 명료한 빛과도 같아서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연명하게 한다. 남의 일에 관심 많고, 남의 시선에 흔들리고, 자신이 아닌 남을 살아가는 그 탁해진 눈빛으로는 세상의 절박한 그 무엇에도 말을 걸 수가 없다.

눈에 낀 뭔가를 거둬내고 이제는 눈빛을 바꿔야겠는데 눈빛은 유리창도 아니고 자동차 바퀴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시들면 뽑아버리면 그만인 꽃도 아니니 이거 당장 참 큰일이다.

이병률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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