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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ㆍ육식녀 시대… 패션에도 '젠더리스'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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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ㆍ육식녀 시대… 패션에도 '젠더리스' 바람

입력
2013.08.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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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이 급기야 경제연구원 보고서에까지 등장했다.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초식남은 공격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고 패션과 쇼핑에 관심이 많은 남성을 뜻하는 유행어다. 반대로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은 '육식녀'로 불린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초식남과 육식녀를 제목으로 내건 보고서를 발표해 주요 매체에 소개됐다. 사회의 극심한 경쟁으로 젠더, 즉 전형적인 사회적 성 역할이 변해 이것이 결혼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기존 성 역할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은 패션계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전유물로 여겼던 화려한 색깔의 액세서리를 선택하는 남성이 늘고, 각진 어깨와 지나치다 싶게 여유있는 실루엣 등 남성의 것으로 생각했던 패션 요소를 수용한 여성복도 많아졌다. 패션 쇼핑의 유혹을 거부하기 힘든 간절기. 성별의 경계가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 스타일에 관심을 가져볼 만한 때다.

지난 봄에 열린 2013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중 신원의 남성복 브랜드 반하트 디 알바자의 패션쇼에서는 과감한 좌우 비대칭의 디자인과 옷의 부분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된 가죽장식 등이 돋보였다. 그뿐 아니라 여성복에 주로 쓰이는 화려한 금속장식과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프린세스 라인, 라펠없는 칼라 등도 런웨이에서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정두영 반하트 디자인 실장은 "사회 전반적인 추세인 여성의 남성화, 남성의 여성화 경향이 패션 트렌드에도 반영되고 있다"며 "꼭 남성이 입어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는 생각으로 디자인하기 때문에 남성복 패션쇼지만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은 남녀 모델을 함께 세우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여성복의 남성화 경향은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몇 년째 계속돼 온 현상이다. 일하는 현대 여성의 당당함을 강조한 매니시룩이 가을마다 반복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정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패션 동향의 기원은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유니섹스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니섹스룩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옷을 일컫는다. 특히 소비사회를 거부하는 히피 문화의 발로로 유행하기도 했다. 현대의 젠더리스 스타일은 여기에서 좀 더 진화된 형태다. 젠더리스룩은 감정 표현에 충실하고자 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성 역할에 대한 반발이 더 큰 동인이다. 유니섹스룩이 성별 구별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면 젠더리스룩은 서로의 성적 특성을 교차시켜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앤드로지너스룩과 혼용해 쓰기도 하지만 앤드로지너스룩은 남녀의 특징을 모두 가진 것을 의미하므로 최근의 젠더리스룩은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간 성격을 띠는 셈이다.

특히 유니섹스룩이 여성복의 남성화 경향에서 출발했다면 젠더리스룩은 남성복의 여성화 경향이 결정적인 배경이다. 얼마 전 배우 이종석이 표현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캐릭터 박수하처럼 다양한 매체가 현대의 남성을 과거의 전형적인 남성성을 벗어 던진 여성스러운 감성과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남성용 레깅스, 일명 메깅스(meggings)가 뉴욕, 런던, 호주 등지에서 유행한다는 사실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상상조차 힘들던 새로운 현상이다.

최근의 젠더리스 패션 경향은 패션업계가 아닌 소비자들이 먼저 주도하면서 확산되고 있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체형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실루엣의 의상을 내놓는 여성복 업계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좀 더 여유있고 자연스러운 피팅감을 추구해 남성복 매장을 즐겨 찾는 여성이 많아졌다.

회사원 백미경(36)씨는 남성 캐주얼 매장을 즐겨 찾는다. "스타일을 고려하면서도 활동하기 좋도록 품이 넉넉하게 디자인된 옷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더욱이 최근에는 몸에 딱 맞는 타이트한 스타일을 원하는 남성 소비자들이 늘어 백씨 같은 여성 소바자들이 남성복 매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정해진 H&M코리아 마케팅실장은 "티셔츠의 경우 사이즈는 물론 남성용 제품 그래픽의 다양성 때문에 선택하는 여성이 많고 재킷이나 셔츠를 남성복 라인에서 구입하는 여성도 많다"고 거들었다. 정 실장에 따르면 마른 체형의 남성 소비자들이 여성용 레깅스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가방 등 액세서리는 이미 남녀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선택폭을 넓히려는 소비자들의 이 같은 뜻은 패션업계의 경영전략에 곧바로 반영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의 남성복 브랜드 커스텀멜로우는 최근 2종의 티셔츠와 4종의 셔츠를 여성용 제품으로 내놓았다.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과 자연스러운 느낌을 선호하는 적지 않은 여성 고객들이 남성 제품을 꾸준히 구입하는 데 따른 전략이다. 커스텀멜로우는 이 참에 아예 여성라인을 론칭하기 위해 별도 팀을 꾸려 준비 중이다. 허연 커스텀멜로우 기획팀장은 "기존의 남성 고객과 다른 젊은 남성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감성적인 포인트를 강조한 브랜드여서인지 브랜드 론칭 초기부터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관심도 많았다"며 "본격적인 여성라인을 내놓기 전에 시그니처 아이템을 여성용으로 선보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감성을 찾으려는 소비자 요구에 따라 등장한 젠더리스룩은 표현 범위를 넓히며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성 추구를 위한 자유로운 감성을 드러내는 젠더리스룩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려면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한 요소들을 적절히 믹스매치(섞어입기)하는 게 포인트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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