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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성산산성 221호 목간에 우리나라 최초 이두 문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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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성산산성 221호 목간에 우리나라 최초 이두 문장 있다"

입력
2013.08.2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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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221호의 이두 문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이두 문장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두 문장이 출현한 시기는 종전 7세기보다 앞당겨진 6세기 중엽이 된다.

29일 함안군과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한국문화 61호(3월 발행)에 기고한 '함안 성산산성 221호 목간의 해독'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신라시대 표기법이다.

이 교수는 목간의 4면에 기재된 68자 중 해독이 가능한 50여자를 분석한 결과 '走在日(서둘러 가는 날)', '不行遣乙白(못 갔음을 아룁니다)' 등 우리말 어순에 따라 작성됐고, '不行遣乙白'에서 乙이 조사 '을'로 쓰인 것처럼 국어 문법 형태가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 또 기와나 벽돌 100장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위 명사로 百과 瓦를 합친 '한국 한자'가 쓰인 것도 이두 문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목간에 쓰인 예서의 서풍으로 미루어 목간이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이고, 6세기 이전에 이두로 작성된 문서를 달리 찾을 수 없어 한국 최초의 이두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종전까지는 6세기 후반(578년)에 제작된 대구 무술오작비에 기재된 문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이두 문장으로 알려졌다.

이 문장은 당시의 제도 등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어 한국사 연구에도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이 교수의 해독에 따르면 문장은 한 촌주가 군대에서 치러진 의식에 참석했고, 인력 할당량을 채우려 했으나 갑작스러운 변고가 생겨 이행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행정 문서다. 이에 따라 ▦신라에서 6세기 중엽 이미 문서 행정이 시행됐고 ▦중요 시설물을 만들 때 마을(村) 단위로 인력이 동원됐으며 ▦긴급 상황시 노역의 의무를 연기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로 25.0㎝, 세로 3.4, 두께 2.8㎝의 소나무로 제작된 221호 목간은 2011년 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한국목간자전에 처음 공개됐다. 성산산성은 281점의 목간이 출토돼 국내 최대 목간 보물창고로 꼽히는 고대 성곽이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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