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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대회 부활 축하" "고교야구 다시 성장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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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대회 부활 축하" "고교야구 다시 성장 계기"

입력
2013.08.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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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봉황대기의 역사와 함께 한 스타플레이어들도 3년 만에 새로 태어난 제41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이구동성으로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충암고를 7회 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던 조범현 KT 감독은 "봉황대기는 내 야구 시절의 특별한 기억일 수밖에 없다. 예선 없이 전국 고교 팀이 전부 참가해 승부를 겨루는 것만으로 의미가 깊은 대회였다.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 바람직한 부활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9회 대회 3위에 올랐던 북일고 출신 김진욱 두산 감독도 "다시 고교야구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고교 시절 허리가 안 좋아 타자로 나갔는데 3, 4위전에서 3학년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 때문에 자청해서 선발 투수로 던져 좋은 결과를 만들어 기억이 남는다"고 추억했다. 그는 "선수뿐만 아니라 구리 인창고 감독으로서도 31회 대회에서 값진 준우승을 차지했다. 신생 팀으로 창단 2년 만에 1, 2학년만 데리고 준우승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다. 돌이켜 보니 봉황대기와 참 인연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수 넥센 배터리코치와 유지현 LG 수비코치는 각각 14회와 18회 대회 최우수선수 출신이다. 김 코치는 "서울고 2학년 때 MVP를 받아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고, 유 코치는 "역사와 전통의 대회 부활을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처럼 봉황대기 40년은 한국 야구 역사와 닮았다. 봉황대기가 배출한 최고 스타는 박찬호(전 한화)로 공주고 3학년 때인 1991년 21회 대회 2회전에서 광주일고에 단 2안타만 내 주며 완봉승을 거뒀다. 악연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1학년이던 1989년 휘문고와 16강전에서 초고교급 타자 고(故) 박정혁에게 3연타석 홈런을 맞기도 했다.

1991년에는 고(故) 조성민이 신일고에 첫 우승을 안기며 최우수투수상과 홈런상을 받았다. 1993년 경북고 준우승 당시 이승엽(삼성)은 선발 투수 겸 4번 타자로 활약했고, 1991년 배명고 김동주(두산)는 최우수투수상과 단일 대회 최다홈런(18개) 신기록을 작성했다.

김재박 전 LG 감독은 대광고 2학년이던 봉황대기 원년(1971년)에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1973년엔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을 받으며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끌었던 고(故) 장효조가 스타덤에 올랐고, 선동열 KIA 감독은 광주일고 시절인 1980년 경기고와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같은 대회에서 이종두(삼성 코치)는 고교야구 첫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했다. 지금도 고교야구 스타로 기억되는 박노준, 김건우(이상 선린상고) 역시 1981년 봉황대기에서 빛을 발했다. 1985년 고(故) 박동희는 5경기에서 10안타만 내 주며 평균자책점 0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봉황대기 최다 우승팀은 충남의 강호 천안 북일고로 총 5차례 정상에 올랐고 뒤를 이어 대구고가 4차례이자 지난 40회 대회 마지막 우승 팀으로 남아 있다.

김응용 한화 감독은 "예전 고등학생 선수들에게 서울 오는 것은 꿈 같은 일이었다. 봉황대기는 전국대회 무대를 밟지 못한 약 팀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대회다. 많은 선수들이 이 대회를 통해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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