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며칠 전 민주당이 주장하는 국가 정보원의 대선 개입의혹에 대해 “국정원의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민생과 거리가 먼 정치와 금도를 넘어서는 것은 정치를 파행으로 몰게 될 것”이라며 “그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이정현 홍보수석비서관이 “공당답게 금도를 지켜야 한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민주당이 전날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3o15 부정선거가 시사하는 바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고 한 데 대해 불쾌한 반응을 공식화한 것이다. 청와대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을 1960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던 3o15 부정선거와 비교한 것은 묵과하기 힘들다”며 격앙된 분위기를 보였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정미 민주당 대변인은 “이런 금도를 지켜야 할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았나. 국민 앞에 진실만을 답하겠다는 증인선서를 거부한 원세훈, 김용판은 금도를 지켰나. 대선 부정 의혹의 핵심 증인이라 할 수 있는 권영세, 김무성의 출석 거부는 금도를 지킨 것인가. 대한민국과 광주를 가르며 광주시민 가슴에 피멍을 새긴 조명철 의원은 참 잘도 금도를 지켰다.”고 논평했다.
이어 이 대변인은 “국기문란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과 국정원 개혁, 부정 연루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상식적 요구 앞에 통치권자로서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지금의 태도, 그 자체가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금도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요즘 금도라는 말이 참 많이도 쓰이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 말을 즐겨 쓴다. 정치인들은 원래 거짓말을 잘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유식하게 말하려고 연구하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물도 흐르지 않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게 정치인이라던가.
그런데 금도의 원래 의미와 용법에 맞게 그 말을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이 드물다. ‘금도(襟度)’의 襟은 마음 금, 옷깃 금이라는 글자다. 度는 헤아릴 도라 새긴다. 금도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magnanimity, generosity, broad-mindedness라고 하나 보다.
그러니까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를 넘어섰다,” “금도를 지켜라”, 이런 표현은 어법에 맞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금도가 ‘지켜야 할 선’, ‘남들에게 용인될 수 있는 언행의 정도(程度)’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정현 수석도 이 점을 의식한 듯 “야당이 상식선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라고 표현을 수정했다고 한다.
다음의 발언에 나온 금도는 제대로 된 표현이다. “야당으로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욕을 좀 먹더라도 금도를 발휘해 정치적으로 크게 풀어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정대철 전 통합민주당 상임고문).” “양국 지도층과 언론은 좀 더 넓은 시야에서 관용과 금도를 갖고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공로명 전 주일대사).”
정치인들이 오염시키는 게 어디 말뿐인가. 그들이 한강에 빠지면 한강이 오염되니까 얼른 구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을 지경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야말로 정치인들은 금도가 있어야 한다. 국민에 대해서, 상대 당에 대해서. 먼저 그런 금도가 있어야 지키든 말든 할 것 아니겠나. 있지도 않은 걸 지키라고 서로 삿대질을 하며 날을 세우고 있으니 우습고 딱할 뿐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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